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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존경받는 재벌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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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존경받는 재벌의 조건

입력
2009.03.06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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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지금은 투자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출자총액제한이 사라지게 된 것과 관련, 앞으로 투자가 얼마나 늘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 그룹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출총제는 그 동안 정부 규제 정책의 핵심으로 불려왔다. 재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근거를 대면서 폐지론을 폈다.

전경련은 2004년 출총제로 인해 2001~2004년 9개 그룹이 신규 투자를 포기했거나 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된 경험을 갖고 있다는 보고서도 냈다. 당시 9개 그룹은 출총제가 폐지될 경우 ‘신규투자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전경련은 이어 2006년에도 자체 조사에서 출총제가 폐지되면 8개 그룹이 14조원을 추가 투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출총제 폐지로 투자를 늘릴 수 있게 됐다며 구체적 계획을 내 놓은 곳은 아직 없다. 사실상 대부분 기업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원ㆍ달러 환율이 1,600원선을 위협하는 상황이 언제 재현될 지 모르고, 비즈니스 플랜마저 매주 수정해야 하는 경영 환경 등을 감안하면 재계의 반응이 수긍 못할 바는 아니다. 엊그제 통과된 법안에 바로 투자계획을 내놓으라는 주문이 성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의 족쇄라고 지목했던 규제가 사라진 만큼 이제 재계가 대강의 계획이라도 밝히는 것은 신뢰의 문제다. 특히 스웨덴의 존경받는 기업인 발렌베리 가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38년 발렌베리 가문은 항공기 회사인 사브(SAABㆍ이후 자동차사)를 설립한다. 노ㆍ사ㆍ정 대타협의 대명사인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경영권을 인정받게 되자 세계적인 대공황의 와중에도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것.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부의 집중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국민이 발렌베리 가문을 존경하는 이유다. 모두가 어렵다는 지금이 국내 재계에는 국민적인 신뢰회복의 더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박일근 경제부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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