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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지겨운 불복투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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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지겨운 불복투쟁 시대

입력
2009.03.06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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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회와 여야 지도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넌덜머리가 난다. 작년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회 폭력과 충돌의 추한 행태는 대의민주제 자체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까지 겹쳐 국회의원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더 크다.

소설가 이문열 씨가 2주 전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불복(不服)의 문화를 언급했다. 우리 사회에는 '불복의 카르텔'이 있으며, 구조화한 불복의 문화가 정권 뿐만 아니라 헌법체계의 근간인 대의민주제마저 흔들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특히 다수결에 대한 불복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상시적 구조로 자리잡은 것 같다면서, 촛불집회는 대선 총선으로 대표되는 대의제 다수결에 대한 불복이 집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의제 흔드는 구조적 문제

촛불집회에 대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지만, 불복의 문화가 뿌리 깊다는 말에는 동의하며 폐해를 걱정하게 된다. 그가 이 말을 하기 전에 이미 여권 내에서 야당의 행태를 가리켜 '사실상 대선 불복운동'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이 씨가 발언할 때마다 환호와 야유가 뒤엉키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엔 파장이 의외로 작아 보인다.

불복은 승부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다. 합리적 절차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 게임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무효를 주장하거나 재경기를 요구하거나 승자의 권리 행사를 저지ㆍ방해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행동은 결국 자기도 인정하지 말아야 하는 정체성 문제에 직결된다.

대선 총선에서 패한 민주당을 이끌어가는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는 경위야 어떻든 '불복의 중심'이다.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온유한 그들의 성품과 달리 민주당이 왜 저러느냐고 묻곤 한다. 당내 역학관계와 세력 판도상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만 믿는다면 그들이 너무 초라하다. 정부여당에 대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협력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은 결국 소신이거나 당내는 물론 외부에 대한 고려 때문일 것이다.

당내에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여론이 높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박상천 의원이 제안한 '타협 추구형' 국회법 개정도 별 진전이 없어 보인다. 쟁점법안에 대해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각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표결에 앞서 '법안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끝내 타협이 안 될 경우 전체회의 재적의원 과반수의 의결로 조정절차를 끝내자는 것이다. 이런 제의를 한나라당은 왜 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주요 집단의 불복은 뿌리 깊은 싹쓸이문화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긴 자가 다 차지하는 승자 독식, 승부 결과에 승복 정도가 아니라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행태가 반발을 키운다. 원래 당한 사람은 그대로 갚으려 하게 되며, 나쁜 짓은 욕하면서 배우는 법이다.

편을 가르고 진지를 쌓아 견고하게 싸우는 모습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거의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의 나쁜 유산이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이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는 다수결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이라고 말한 것은 새삼스럽다. 노 전 대통령은 "다수결로 결정하려 하는 내용에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다수결 자체를 반대하거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협력을 거부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적극적 방해라도 막는 역량

민주당을 두둔하는 발언 같지만, 충분한 대화와 설득ㆍ타협을 거쳐 다수결에 부칠 수 있는 안을 다듬어 내면 표결 결과에 흔쾌히 승복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적극적인 방해는 하지 않게 된다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적극적인 방해라도 하지 않게 만드는 승자의 도량과 아량, 그러니까 정국을 이끌어가는 역량이 필요하다. .

물이나 술 미음 따위에 가루약을 타서 마시는 일을 화복(和服)이라고 한다. 그것이 왜 화복일까. 이렇게 섞어 마시는 일에 통합과 포용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복의 문화를 어떻게든 고쳐 나가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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