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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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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수타

입력
2009.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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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한번에 들이닥친 중국집은 말 그대로 호떡집에 불이 났다. 그 말의 어원에 우리의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게에 들어서자 그 말이 딱 떠올랐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호되게 당한 뒤로 자장면 매출이 뚝 떨어졌단 말도 다 거짓인 듯했다. 돌아가는 손님도 생겼다. 가게 한쪽 청년 하나가 서서 연신 반죽을 들어 메친다. 뜻밖에도 수타 기술자는 언제 저런 기술을 익혔을까 싶은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다.

반죽을 메칠 때마다 손가락 사이에서 점점 느는 면 가닥 수가 신기해 홀린 듯 구경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중간중간 리듬도 끊기고 면발도 끊긴다. 한번쯤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구하려는 마음도 먹었을 것이다. 언젠가 독립해 자신만의 요리집을 내는 꿈도 키워가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옆집에 중국요리 기술자가 살았더랬다. 맛있는 요리 많이 해먹겠다는 말에 집의 화력으로는 중국집의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했다.

화력이 어찌나 센지 불소리와 기름소리에 고함을 쳐서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한참 기다려 받아든 청년의 수타 자장면. 급한 마음이 수타면에 나타나 있다. 굵었다 느닷없이 실처럼 가늘어지고 또 굵어져서 면을 빨아먹다 보니 입술이 간지럽다. 둘러보니 사람들 모두 입을 오물오물, 장난치고 있는 것 같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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