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는 국내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 WCU)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역량이 우수한 교수가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연구를 수행하면 국내 연구 여건이 향상되고, 새로운 기반 산업을 창출하여 신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 MIT의 교수였던 어윈 제이콥스(Erwin Jacobs) 박사는 이동전화 통신에 사용되는 CDMA(code-division multiple access) 기술을 개발하고 퀄컴(Qualcomm)사를 창업하였다. 이 기술은 1993년 11월 우리나라 체신부 고시를 통해 디지털 이동전화방식의 표준으로 공식 결정돼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되었다. 우리나라가 지난 10년간 퀄컴에 지불한 기술사용료가 약 3조 4천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 연구자의 연구성과가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경제효과를 알 수 있다.
WCU 사업은 구체적으로 해외 저명학자를 국내 대학에 연간 최소한 한 학기, 총 3년 이상 초빙하여 국내 대학교육과 연구 풍토를 혁신하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자 추진되고 있다. 최근 사우디, 싱가포르, 중국도 이와 유사한 해외 인재 유치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부의 이러한 대학교육 및 연구 여건 향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에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현재 정부와 공공기관이 공고하는 대학연구관련 사업은 대부분 연구계획서를 국문으로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제안서를 영어로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일정 분야에는 과제의 성격상 영어로 된 제안서를 허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특히 WCU 사업과 같이 해외 학자와의 국제 공동연구를 추진할 때는 영문 제안서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현재 WCU사업은 제안서 연구 및 교육 내용을 영어와 한국어로 모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중복된 내용을 우리말 또는 영어로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연구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대학이 국제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원인 중 하나는 외국인 전임교수 수가 적기 때문이다. 2006년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 전임교수는 2,078명으로, 국내 대학 전체 교수의 3.75%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외국 학자가 제안서와 연구보고서를 우리 말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생이나 직원들이 번역을 맡게 되어 비효율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게 되며 외국 학자들을 유치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마지막으로 최근 각 대학 교수평가에서도 국제논문 실적이 국내논문보다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국내 교수들이 연구결과를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번역해야 하는 것은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크게 저하시키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연구제안서의 평가를 국외 석학에 의뢰하여 연구과제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고 있다. (WCU 사업의 국문 연구제안서는 국내 심사에 사용되고 영어 제안서는 해외 평가에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제안서의 영어제출 허용방안을 선택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5일은 WCU 사업의 2차 접수 마감일이다. 우수한 과제들이 선정되어, 국내 연구 풍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를 기원해 본다.
손훈 국과학기술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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