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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의료단지' 열병 앓는 지자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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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의료단지' 열병 앓는 지자체들

입력
2009.03.0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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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번에는 '메디시티'(Medi-Cityㆍ의료도시)라고?"

2일 아침 대구 지하철2호선 경대병원역. 지하철을 타러 가던 박미숙(39ㆍ여)씨는 '메디시티 대구'라는 대형 홍보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2년 전만 해도 '자기부상열차'와 '로봇랜드'를 알리던 대구의 슬로건이 최근 '메디시티'로 바뀐 것.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도시의 슬로건이 시민들에겐 선뜻 와 닿지 않지만, 대구시로서는 두 손 놓고 있을 여유가 없다. 국책사업인 첨단의료복합단지 입지 결정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3ㆍ1절 강원 원주에서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 기원 원주시민 건강달리기 대회'라는 이색 행사가 열렸다. 10회째인 대회에 새로운 명목을 내건 것이다. 시도민 3,000여명이 참가한 이날 행사장 곳곳에는 의료단지 유치 구호와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2일 광주시청에서는 광주시와 전남도가 전남대병원 등 14개 지역 종합병원과 지역 의료산업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전은 지난달 '대덕 국제바이오 메디컬 포럼'을 열었고, 부산ㆍ울산ㆍ경남은 1월에 '동남권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위원회 출범식', 대구도 같은 달 일본 고베시와 의료산업 공동추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공모를 거쳐 선정되는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하기 위해 전국이 들끓고 있다.

아직 신청 공고도 나지 않았는데, 경쟁에 뛰어든 후보지가 10개에 이른다. 부산ㆍ울산ㆍ경남과 대구ㆍ경북, 광주ㆍ전남 등 3개 광역자치단체 연합이 '세(勢) 과시'에 나선 가운데, 강원 원주시, 경기 고양시 등 기초단체들도 광역단체의 지원 아래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과열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고, 자치단체의 예산 및 행정력 낭비를 부르는 공모 방식의 국책사업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 땅값 들썩… 부작용 속출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지자체는 3,000억원 규모의 부지만 제공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과열 경쟁으로 벌써 후보지 인근의 땅값이 들썩이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

2007년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과 로봇랜드 유치에 실패한 대전은 설욕을 다짐하며 이미 용역비만 수억원을 들였다. 대전의 경우 자기부상열차 유치전 당시 시범노선 구간인 전민동 일대 아파트와 땅값이 일제히 급등했다가 실패 후 폭락한 전례가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도 총 5억원의 유치 용역비를 쏟아부었다. 대구시는 지난해 3월 의료단지 등을 전담하는 의료산업과(15명)를 신설하기도 했다. 충북도는 지난해 8월 도민 100만명이 참여한 유치서명운동을 벌였다. 전체 인구 150여만명의 3분의2 이상이 동원된 것. 일부 시도 관계자는 "지자체 고생시키지 말고 차라리 정부가 지정하는 게 낫겠다"고 푸념했다.

■ 정치바람에 뜬소문까지

자치단체들은 부지 선정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정작 기대는 곳은 '정치권'이다. 한나라당 충북도당이 1월 "의료단지의 오송 유치를 위해 힘을 쏟겠다"는 성명을 내는 등 지역 정치권도 발벗고 뛰고 있다.

박성효 대전시장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전이 과거 여러 국책사업을 따내지 못한 것은 경쟁력을 갖추고도 정치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러니 국책사업 선정 때마다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다.

음해성 뜬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지방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 지자체는 배제된다"는 말이 떠도는가 하면, "의료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중소도시도 찬밥"이라는 얘기가 나돌며 분야별로 쪼개 단지를 분산 조성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부작용이 속출하자 한편에서는 "청와대에서 (공모가 아닌) 정부 지정쪽으로 돌아섰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 국책사업 공모, 개선책 없나

국책사업 때마다 공모 방식의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의료단지 사업의 경우 워낙 예산규모가 커 부작용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 지정이나 공모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공모를 하더라도 일정한 제한을 두지 않으면 너나없이 유치전에 뛰어들고 탈락 지자체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정부가 자기부상열차 선정 당시 자체예산부담이 많은 지자체를 우대, 출혈 경쟁을 부추겼고 결국 지자체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해법의 하나로 지난해 9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확정한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활용을 제안한다. 수도권과 충청, 호남, 동남, 대경, 강원, 제주권 등 7개 광역권역별로 지정한 선도 프로젝트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신규 국책사업을 지정하자는 것이다.

대구경북연구원 장재호 지식산업실장은 "지금처럼 원칙 없는 국책사업 선정은 '부익부 빈익빈' 심화나 '나눠먹기식'으로 흐를 우려가 크다"며 "광역경제권별로 추진 중인 전략산업을 더 육성하는 방향으로 국책사업을 선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첨단의료복합단지

참여정부 때 의료산업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신(新)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한 국책사업. 국비 2조원, 지방비 3,000억원, 민자 3조3,000억원 등 5조6,000억원이 투입된다.

2037년 완공되는 99만㎡ 규모의 단지에는 신약개발지원센터 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첨단임상시험센터 등 핵심시설과 실험동물센터, 바이오센터, 벤처연구타운 등이 들어선다.

특히 국내 제약업계의 신약개발 지원은 물론, 다국적 제약사의 임상시험 유치로 경제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38만명의 신규고용 및 82조원의 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인사 17명으로 구성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위원회'에서 6월께 입지를 확정한다.

목상균 기자 sgmok@hk.co.kr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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