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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구려 세계유산 등록 1년 늦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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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구려 세계유산 등록 1년 늦춰 달라"

입력
2009.03.0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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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산 등록 산파 히라야마씨에 연기 요청 이듬해 북한-중국 개별 신청해 각각 등재

중국이 고구려 유적을 2003년 북한 단독이 아니라 중국과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키 위해 주일 중국 대사까지 나서 북한 등록 연기 공세를 펼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2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북한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지원한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 전 도쿄예술대학장은 (고구려 유적은) “원래 내가 북한과 유네스코 사이에 이야기를 진전시켜 2003년에 북한이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등록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면서 당시 “1년 연기시킬 수 없느냐”는 우다웨이(武大偉) 주일 중국대사의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히라야마 전 학장과 북한 고구려 유적의 인연은 1990년대 중반쯤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처음 북한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그가 특별히 고구려 유적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은사인 화가 마에다 세손(前田靑邨ㆍ1885~1977)씨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높이 평가한데다 벽화를 참고로 자신이 그린 기원전 3세기 전후 히미코(卑彌呼) 여왕의 상상도가 다카마쓰즈카(高松塚)고분의 아스카(飛鳥)미인도를 꼭 빼닮은 것이 계기다.

실제 고구려 벽화를 본 뒤 히마야마 전 학장은 이전부터 친분 있던 북한의 문화재 담당 간부에게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천했다. 자신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사비(私費) 1,000만엔을 쾌척하고 컴퓨터 등 유산 모니터용 기계를 가져다 주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 신청서 작성 노하우를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북한 담당자를 태국의 유네스코 기관에 유학까지 시켰다.

당시 유네스코 내부에서는 유산 보호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치상황이 불안한 북한의 등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히라야마 전 학장은 “이데올로기 문제는 별개로 하고 유네스코 헌장의 정신으로 다루자”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2003년 여름 세계문화유산위원회를 앞두고 북한의 고구려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세계문화유산위원회와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관계자의 내락을 얻을 수 있었다. ‘고구려 고분군’이 북한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끼어 든 나라가 있었다. 바로 중국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의 최종 심사가 있기 1주일쯤 전 히라야마씨가 학장으로 있는 도쿄예술대학에 주일 중국대사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장실에 나타난 것은 우다웨이 당시 주일 중국대사였다. 우 대사는 2004년부터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맡고 있으며 한중 고구려 역사분쟁 당시 중국측 대표를 맡기도 했다.

히라야마 전 학장에 따르면 우 대사는 불쑥 “북한의 세계유산 등록을 1년 연장시켜주실 수 없느냐”고 말을 꺼냈다. 경계를 감추지 못하는 히라야마 전 학장에게 우 대사는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에도 고구려 고분이 있다. 한쪽만 먼저 등록하면 나중에는 등록할 수 없게 되니 동시 등록이 바람직하다. 어떻게든 북한을 설득해주실 수 없겠는가”고 말했다.

히라야마 전 학장은 북한의 반발을 고민하면서 우선 중국에 “동시 등록 약속은 반드시 지켜주기 바란다”고 요구한 뒤 북한에 “중국의 입장이 있으니까 1년 참아줄 수 없겠는가”하는 의사를 전했다. 결국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는 북한의 등록을 “비교 연구가 부족하다”는 등을 이유로 연기 결정했다.

히라야마 전 학장은 이후 중국을 방문해 공산당 간부들에게 “정치와 문화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큰 나라답게 관용을 갖고 행동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문화 담당 간부에게 “식량이나 연료 등 중국에서 이제까지 지원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참아줄 수 없겠나”고 말했다고 한다.

히라야마 전 학장의 바람은 두 나라가 하나로 고고려 유적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것이었지만 고구려 역사논쟁까지 불거지면서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2004년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의 ‘고대 고구려왕국의 수도와 고분군’이 각각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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