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자식들 도시락 싸다 남은 김밥
몇 줄 썰던 아내가 갑자기 소풍 가잔다
소풍은 걸으면서 바람과 잘 논다는 것
반드시 도시락에 김밥 싸 가지고 가서
바람에게도 한 입 먹여줘야 하는 것
아내가 평생 안치고 푼 쌀밥과
씻은 그릇은 얼마나 되는가
아이 잘 배던 아내는 가난했던 젊은 날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아이 많이 지웠는데
이제 몸에 통풍하는 나이가 되어 맛난 것 만들어놓고 보니
낯선 바람 찾아서라도 한 입 잘 먹여주고 싶은가 보다
맑은 봄날 시골 가 들길 걷다 나란히 앉았다
아내는 도시락을 풀어서
김밥 한 개 멀리 바람에게 고수레하고
또 한 개 던지려다 말고
내 입에 쏙 넣어주었다
먹는 것이 전부이다시피 한 삼백육십오일 일생, 우리가
저마다 먹으러 이전의 세상에 와 만났으나
서로 먹이지 못하면 이후의 세상에 가는 것이다
자식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소풍 끝내려는데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이제 소풍 갈 나이의 자식을 둔 중년 부부의 소풍. 젊었을 적 가난하지만 않았어도 더 많은 자식을 두었을 부부가 봄날, 소풍 가서 바람에게 김밥을 먹이고 있다. 지나가는 바람이 그 김밥을 먹지는 않았을 거고 김밥은 땅 위로 툭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 입으로 넣어준 그 김밥은 정말 남편이 먹었을 것이다.
인간의 일생을 먹으러 온 시간으로, 그리고 서로 먹이지 못하면 이 지상을 이별하는 순간으로 여기는 이 수더분하고 더운 인생론. 이 인생론을 읽으며 마음이 저린 이유는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먹일 자식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소풍을 끝내려는데 바람은 계속 불어온다. 어쩌면 바람은 김밥을 정말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생 동안 지나가는 바람 몇을 자식처럼 여기는 허영을 우리는 누려도 괜찮지 않을까.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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