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은 1일 아침 일찍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3ㆍ1절 기념식 행사 참석차 한남동 공관을 나섰다. 행사가 끝난 뒤 그는 여야가 팽팽히 대치한 여의도 국회 대신 가끔씩 들른다는 서울 시내 조그만 교회를 찾아 예배를 봤다. 한 측근은 "(김 의장이)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면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수개월간 그를 짓누르던 고민의 행로가 종착역을 앞두고 있음을 김 의장의 이날 행보는 잘 보여줬다.
"법안을 직권 상정하려면 숙성돼야 된다"는 것은 연말 국회 때부터 지켜온 김 의장의 소신이자 원칙이었다. 그래서 김 의장은 2월 국회에서도 금산분리 완화 관련법안 등 민생ㆍ경제법안을 우선 직권상정 해 처리한 뒤 미디어 관련법은 여야간에 좀 더 논의를 거치도록 하겠다는 그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권의 반발은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이참에 미디어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물 건너 간다"는 우려와 "(국회의장이) 이미지만 관리하려고 하느냐"는 지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월 국회에서 매듭 짓지 않으면 추경 처리와 4월 재보선 등에 밀려 미디어법은 하염없이 뒤로 밀릴 것이라는 게 여권의 판단이었다.
연말 쟁점법안 대치 과정에서 끝까지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했던 김 의장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김 의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권의 압력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토로했다. 한나라당은 임기가 끝나면 돌아가야 할 친정이기에 그 압력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1월과는 달라진 상황도 김 의장 운신의 폭을 좁힌다. 1월에만 해도 김 의장은 여당의 직권 상정 요구에 당당히 손사래 칠 명분을 갖고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100여 개에 달하는 쟁점법안을 들고 와 직권상정을 요구했고, 김 의장은 "국민도 모르는 법을 직권 상정할 수 없다"는 말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논리의 힘이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민주당이 미디어 법의 상임위 상정조차 막는 등 일절 협상을 거부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도 결과적으로 직권상정의 논리를 강화시켜주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봐야 논의가 진전될 리 없다"는 강행 논리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이다.
김 의장은 이날 저녁까지 시내 모처에 머물려 여야의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는 측근들을 통해 "밤을 세워서라도 협상을 하라"며 거듭 여야의 협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협상 타결 소식은 날아들지 않았고 여야 대표간 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김 의장은 결국 늦은 밤 국회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여야 원내대표들과 정책위의장단을 소집해 마지막 중재에 나섰다. "경제 민생 관련 법안은 우선 처리하되 미디어법은 다음 국회서 처리하자"는 중재안을 들고서였다.
직권 상정 강행과 극적 타결의 경계에 선 채 속 끓이는 줄타기가 계속된 하루였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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