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중요한 법안을 놓고 타협을 도출하지 못할 때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2월 임시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2차 법안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16대 국회부터 국회법을 개정, 국회의장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당적까지 이탈하도록 했지만, 정치현실은 어김없이 의장에게 친정인 다수당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재임 중 이런 고민을 했던 역대 국회의장들에 해법과 조언을 구했다.
17대 후반기를 맡았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의 당적을 이탈하도록 해놓고 집권당 뜻대로 직권상정하라니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임 전 의장은 "재임 중 단 1건 BBK 특검 도입을 직권상정했는데 진실규명이 필요했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안 처리를 놓고 열린우리당이 직권상정 압력을 행사했지만 끝내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딱히 묘책은 없지만 2월 국회에서 경제 관련법안을 처리하고 미디어법은 연기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김원기 전 의장(17대 전반기)은 "나도 사학법을 직권상정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여야가 2년간 협의하고 대표간 합의까지 했지만 내 임기 말까지 다시 미루려고 했다"면서 "그래서 다음 의장에게 넘기면 안되겠다 싶어 막판 처리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미디어법은 국민들도 내용을 몰라 공론화 되지 않았다"며 "인내를 갖고 더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재임 중 직권상정을 한 건도 직접 하지 않은 이만섭 전 의장(16대 전반기)은 "정치의 묘미는 강온과 완급의 조절이다. 과속하면 사고난다"고 말했다. 그는 "입법부 수장은 다음을 바라보고 계산하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면서 "청와대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전 의장은 "내가 김형오 의장이라면 미디어법 직권상정 안 한다고 당당히 밝히겠다"며 "여당은 강행통과시키려는 정력으로 국민설득에 나서라"고 지적했다.
반면 보수진영 출신 의장들은 직권상정을 적극 지지했다. 2004년 질서유지권을 발동,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했던 박관용 전 의장(16대 후반기)은 "여야 간 타협이 거듭 실패, 국민들은 진저리를 내고 있다"며 "의장이 나서 국회법에 따라 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출신 의장이던 그는 "나는 55분 대화와 타협을 하고 5분은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했다"며 "직권상정 딱 1번 했는데 친정인 한나라당이 KBS 시청료를 분리징수해야 DMB법(이동멀티미디어법) 통과에 협조한다고 했지만 법안의 중요성을 감안, 직권상정해 처리했다"고 말했다.
김수한 전 의장(15대 전반기)은 "여야 모두 구제불능이지만 다수당이 너무 무기력, 무책임하다"며 "야당 비유에 맞는 법만 심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는 의장이 최종 책임져야 하며 직권상정은 의장의 고유권한"이라며 "타협이 안 되면 표결해야 하며 야당은 문제점을 부각시켜 다음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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