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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크리스티 경매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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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크리스티 경매와 중국

입력
2009.03.0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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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프랑스 파리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토끼머리, 쥐머리 청동상은 중국인에게 각별한 유물이다. 두 청동상은 중국 베이징(北京) 서북쪽의 청(淸) 황제 여름 궁전 원명원(圓明園)에 있었다. 하지만 1860년 베이징을 점령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에 불을 지르고 12지신(支神) 형상의 청동상 12점을 가져갈 때 이 두 유물도 함께 유출됐다. 중국인이 이번 경매에서 두 유물이 팔리는 장면을 지켜보며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프랑스와의 관계 더 꼬여

청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건륭제(1711~1799)는 원명원을 세계 최대의 궁전으로 확장하려 했다. 그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과 정원이 서양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선교사의 말을 듣고 베르사이유보다 더 화려한 건물과 정원을 원명원 안에 짓도록 명했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분수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베르사이유 분수가 옷을 벗은 서양 신화의 주인공들로 장식돼 있어 중국의 정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선교사들은 건륭제의 윤허를 받아 12지신상을 제작했다.

건륭제 당시 중국은 세계 생산력의 30%를 차지하는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원명원의 12지신상은 전성기에 대한 그리움 혹은 서양에 뒤지지 않았던 자존심이다. 폐허만 있는 원명원이 중국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적지로 남은 것은'잃어버린 100년'을 뼈 속 깊이 새기려는 중국인의 역사의식 때문이다. 두 청동상이 경매로 팔린 뒤 신화통신은 "150년 전의 역사적인 강탈 행위가 또 다시 최악의 유산을 만들었다"고 애통해했다.

하지만 그런 점을 이해하더라도 이번에 중국이 보인 반응은 예전에 비해 훨씬 격렬했다. 2007년 12지신상 중 하나인 말머리 청동상이 소더비 경매에 나왔을 때도 중국 측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그 동안 중국은 경매에 나온 유물을 중국 부호나 국유 기업을 통해 묵묵히 사들였다.

중국이 크리스티 경매에 예년보다 훨씬 강하게 반응한 배경에는 프랑스와 중국 정부의 갈등이 있다. 지난해 4월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파리에서 일어난 반중 시위와 지난해 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달라이라마 접견 등으로 꼬인 양국 관계가 투영돼 있는 것이다.

점차 희미해지는 도광양회

단단히 화가 난 중국은 중국-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가를 보이콧했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월 독일 영국 등을 방문하면서 프랑스는 찾지 않았다. 중국 구매 사절단은 유럽 주요국에서 130억달러 어치의 유럽 제품을 샀지만 프랑스는 제외했다. 프랑스 에어버스사로부터 항공기 150대를 구매하겠다는 계획도 취소했다.

이번 일을 보면서 개혁 개방 이후 30년간 힘을 감추고 실력을 기른다는 중국의 도광양회(韜光養晦ㆍ칼날을 감추고 칼을 간다) 전략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중국은 2007년 9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달라이라마를 만난 뒤 독일과 마찰을 빚었지만 이내 양국 관계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처럼 대결자세를 풀지 않고 있다. 예전처럼 힘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집이 커지면서 입고 있던 작은 옷이 터지듯 중국의 힘이 분출된다고 볼 수 있다. 주변국인 우리로서는 바짝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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