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자동차종합보험 가입자 면책조항(교통사고처리특례법 4조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검찰은 다음날 곧바로 기소 대상이 되는 ‘중상해의 기준’을 발표했다. 외견상 상당히 신속한 대응처럼 비쳤지만, 현장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교통사고 처리를 담당하는 일선 경찰서에선 헌재 결정 후 처리기준이 나올 때까지 이틀 간 큰 혼선이 빚어졌다. 사건처리가 ‘올 스톱’됐고, 사고 당사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이 기준을 밝힌 뒤에도 사정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생명에 대한 위험, 불구, 불치나 난치 등이 중상해의 기준으로 제시됐지만, 개념이 여전히 애매하고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현장의 가이드라인으로는 미흡하다. 혼선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1997년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릴 때 이미 9명의 재판관 가운데 5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지난해 10월에는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사전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헌 결정 직후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이 사전에 충분히 대비했다면 헌재 결정과 동시에 훨씬 구체적인 처리 기준이 나왔을 것이다.
헌재 역시 혼란을 막기 위해 배려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헌재는 결정 직후 “법 해석 및 적용은 소추기관인 검ㆍ경과 법원의 몫”이라며 공을 넘겼다. 하지만 위헌성을 인정하되 법 개정까지 유예기간을 주는 결정을 내릴 순 없었을까. 이 사안이 그처럼 급박한 구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냐는 의문이다.
헌재의 ‘무신경한’ 결정과 검찰의 ‘굼뜬’ 대응이 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불안감만 키웠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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