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조리사 자격증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다. 설마했던 '어선(魚膳)'이 출제된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나오지도 않던 어선이 왜 하필 그때 나왔는지 지지리 운도 없다고 종일 투덜댔다.
많은 이들이 두려워 벌벌 떤다는 그 어선, 어선은 동태 한 마리를 포 뜨는 것부터 시작한다. 몇 개월 요리 수업에도 셋째의 칼질은 서툴다. 서른이 넘도록 밥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셋째가 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셋째가 재료를 다루는 손길이나 칼질에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요리 선생이 제일 힘들어하는 제자가 누구게? 동생이 퀴즈를 냈다. 셋째처럼 칼을 처음 잡아본 사람일까 아니면 수십 년 가족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먹인 주부일까. 뜻밖에도 정답은 후자였다.
무생채의 경우 고른 무채의 길이와 굵기, 고춧가루로 버무린 적당한 색이 중요하다. 무채를 5센티, 성냥개비 굵기로 써세요, 라는 선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많은 주부들이 자신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무채를 썰었다고 한다.
실습 내내 요리 선생은 조리대 사이를 뛰어다니며 “지금까지의 요리법은 다 잊으세요!”라고 소리쳤다. 동생이 무채를 친다. 명 짧은 사람 다 죽었다고 어머니는 가슴을 치는데 나는 무 앞에서 공손한 동생에게서 내가 잃어버린 것을 읽는다. 초심이다.
하성란 소설가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