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커버스토리/ 불안한 세태… 점에 길을 묻고 위안 얻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커버스토리/ 불안한 세태… 점에 길을 묻고 위안 얻다

입력
2009.03.02 00:00
0 0

경기가 나빠지고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에 빠진다. 정답이 없는 세상이 되어 갈수록 확신을 갖고 미래를 말하는 점술인, 혹은 상담자들의 자신감 있는 말투에서 위안을 찾기 마련이다. 오늘만 견디면 그리 나쁘지 않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고, 동쪽에서 귀인을 만날 수 있다는 등의 말을 듣게 되면 어쩐지 기운이 난다.

최악의 경기 불황으로 시작된 2009년의 벽두에도 사람들은 점술에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점술은 무겁지 않다. 일종의 카운셀러, 컨설턴트라고나 할까. 점술인들은 굳이 접신을 선보이며 무게를 잡지 않는다. 어차피 점술의 결과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대신 패스트푸드를 사먹듯, 인스턴트 게임을 즐기듯, 하나의 놀이로 가볍게 점을 서비스한다. 그래서 요즘엔 직접 점술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했는지 방송 프로그램도 점을 소재로 한 것이 부쩍 늘었다. 2009년의 우리는 무엇을 불안해 하고, 어째서 점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일까.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엔 꼭 사주카페가 있잖아요. 취직이나 진로 걱정하는 이들이 이런 곳에 몰려든다는 게 그만큼 사회가 불안해졌다는 뜻 아닐까요." 서울 이화여대 앞 사주카페 거리에서 만난 박진규(25)씨는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방향 설정을 위해 사주를 본다고 말한다.

"안 믿죠. 그런데 사람인지라 좋은 말을 해주면 믿음이 가잖아요. 그런 말을 듣고 힘도 얻고 걱정도 덜고, 그러니까 점을 보는 것 아니겠어요."

종로의 노상 점집을 오가던 백민애(21)씨. "두 달에 한 번은 꼭 와요. 진로는 물론 소소한 연애 상담도 하죠.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안식을 얻듯이 그냥 재미죠. 심각하면 찾지 않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좋아했던 아이의 이니셜을 맞출 정도로 용한 곳도 있었어요. 하하."

일명 '사주카페 거리'는 이화여대 거리, 종로 종각 일대, 강남역 인근 등 주로 서울 시내의 대학가나 번화가 상권에 형성되어 있다. 우울해 보이는 깃발이 달린 을씨년스러운 점집이 모인 과거의 풍경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곳이다.

똑떨어지는 답보다는 친구의 조언을 듣듯이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여든다. 가볍게 사주, 혹은 타로카드, 점성술을 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싸게는 3,000원에서 수만원까지 다양하다.

이대 앞 사주카페 '에로스'의 역술인 장수연씨는 경기 악화로 손님이 크게 늘었다며 반색한다. "요즘은 하루에 200명씩 찾아요. 연초라 원래 이맘때 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올해는 더하죠. 공직에 있는 분, 학원 강사, 선생님 등 찾는 사람들의 직업도 다양해요.

직장인들은 주로 이직을 해야 하는지,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묻죠. 어제는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와서 아직 계약직인데 올핸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묻더군요. 사주요? 그거 사람들에게 행복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인생이 꼭 숙명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죠."

종로에서 사주를 보는 김성보씨는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현재 경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 앉아 있으면 우리 고용시장 문제가 어떤지 훤히 들여다 보여요. 사주를 정확하게 풀어서 알려주기보다 좋은 이야기 중심으로 얘기해 주면 힘 내서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면 나도 뿌듯해요."

단순히 점집을 찾기보다 스스로 익혀 매순간 운세를 확인해 보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타로 강의를 하는 타로 마스터 최정안씨는 점술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예년보다 30% 정도 수강생이 늘었어요. 자신의 운세를 보려는 사람부터 사업을 하려는 사람까지 다양하죠. 경기 영향으로 직업에 관한 것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혼 문제가 제일 두드러지게 늘어난 관심거리랍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인터넷 운세 서비스로도 몰린다. 옥션 관계자는 "올해 들어 유독 진로운과 애정운 정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수가 눈에 띄게 늘었고 전체적으로 지난해에 비해 28%가량 사용량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고민이 많아진 세상,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에 점은 점차 대중적이고 친숙한 오락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가벼워진 점은 과연 미래 보기라는 원천적인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까.

정ㆍ재계 유명인사들의 미래 상담 컨설턴트로 유명한 이정일씨는 "점성술과 관상을 조합해 미래를 점치고 가족 등 주변인의 운까지 감안해 최대한 정확한 답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며 취미 생활 같은 점치기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정영명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부3)

■ 명리학 강의… 타로 동호회

점을 즐긴다고 해서 점괘를 맹신하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스스로 사주의 원리를 익히거나 타로카드로 점 치는 법을 배워서 점괘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려 하거나 주변사람과의 인간 관계 개선에 활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결혼을 생각하던 20대의 A양은 남자친구와 궁합이 좋지 않아 결혼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그가 찾은 곳은 경희대 사회교육원의 명리학 강좌.

이 곳에서 기문명리학(奇門命理學·사주의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해석해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역리학)을 배운 그는 보통 사주로 보는 궁합과는 달리 남자친구와 통하는 면이 많다는 것을 알고 부모를 설득해 결혼을 하기로 했다.

이곳 수강생 중 하나인 40대 주부 B씨는 "명리학을 배운 뒤 남편으로부터 늘상 무시당하던 관계가 바뀌어 자신감이 살아났다"고 털어놓았다. 사업을 하는 남편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한두 번 조언을 했고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믿게 된 남편이 모든 일을 아내와 상의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타로점을 배우는 대학생 모임도 있다. 서강대 '21C Hermit'(hermit은 은둔자, 예언자라는 의미로 타로카드 9번의 이름이기도 하다)은 2002년 처음 만들어져 지금까지 100여명의 학생들이 거쳐갔다.

동아리 회장인 강성민(경영학과 2년)씨는 "타로점은 태어날 때 운세가 결정된다는 사주와 달리 현재의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에 점을 보러 온 사람의 고민을 충분히 듣고 조언하는 상담사의 역할을 해주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학교 축제 때 타로점집을 열었을 땐 "아들과 사이가 좋지 못한 이유를 알고 싶다"며 찾아온 교수에게 점괘에 따라 "아들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은 적이 많지 않느냐,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조언했고 교수는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자신의 일과 연결시켜 업무 능률을 높이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점을 배우는 이들도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 상담에 도움이 될까 해서 사주를 배우기 시작하게 됐고 이후 문제아를 혼내기 전 학생이 반항하는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또 한의학 지식만으로는 체질 파악에 한계가 있어 명리학을 배우는 한의사도 있다.

경희대 사회교육원에서 기문명리학을 강의하는 강사 손혜림씨는 "모두가 불안한 시대에 적극적으로 점괘을 배워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면서 "예전에는 미신으로 취급받던 동양의 명리학이 거부감 없이 배울 만큼 대중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명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 원리가 다른데… 점괘는 같을까 다를까

재미로, 혹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보게 되는 점(占). 마냥 믿기엔 왠지 바보가 된 것 같고 무턱대고 무시하자니 개살구 먹은 뒷맛이다. 거북이 등껍질을 그슬리던 시절부터 마우스로 산통(算筒)을 '클릭'하는 오늘날까지 마찬가지다. 인간사 길흉화복을 들여다보는, 혹은 알고도 속는 점의 원리는 무엇일까.

● 사주

한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를 간지(干支)로 환산해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이 사주다. '운명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명리학(命理學)이라고도 부른다.

사주 명리학의 관점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받아들인 우주의 기운이 그 사람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 우주의 기운을 기호화한 것이 바로 사주, 곧 생년월일의 네(四) 기둥(柱)이다.

천지의 운행과 일월성신의 움직임, 기후, 산천, 풍토의 기(氣)가 다 사주에 응축돼 있다고 보고 그것을 음양오행의 이치에 비춰 살피는 것이 사주의 기본 원리다. 예컨대 한낮인 오시(午時)에 태어난 사람은 뜨거운 기운을 품고 태어나고, 한밤중인 자시(子時)에 태어난 사람은 차가운 기운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양의 원리에 따라 균형을 강조하는 내용이 점괘의 내용이 된다.

대부분의 사주 점집은 이런 원리에 따라 천문과 절기를 추산한 점괘에 각 사주를 대응해 놓은 일종의 가이드북인 '만세력(萬世曆)'이라는 책을 사용해 점을 친다.

● 타로

타로는 인간의 무의식, 혹은 육감에 의존한다. 글자 이전에 인류가 의사를 소통하던 수단이던 그림을 통해 원초적인 대화를 나누고, 인간의 내면을 읽는 것이 타로다. 따라서 점이라기보다 선불교의 공안(公案)과 같은 측면이 있다.

타로 카드를 뽑는 행위 자체가 무의식적 직관 혹은 '오컬틱 초이스'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되는 원리를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측면이 있다.

타로 카드의 낱장은 아카나(Arcana)라고 부르는데, '비의(秘義)'를 뜻하는 라틴어 '아르카눔(Arcanum)'에서 비롯됐다. 한 사람의 정해진 운명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뽑는 순간의 사차원적 선택으로 갈리게 되는 운명을 예측한다.

타로를 믿는 사람들은, 타로를 뽑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잠재력이 그 사람의 마음과 연관된 카드를 선택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명을 읽어내는 사람의 능력과 마음가짐이다. 각 아카나에는 사람이 겪게 되는 여러 일들과 감정이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뽑는 카드를 통해 그 사람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집중력이 뛰어나고 영적인 기질이 발달된 사람만이 카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 관상과 손금

관상은 단순히 얼굴의 생김새를 읽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반영된 자연의 이치를 읽는 것이다. 인체라는 소우주에 깃든 대우주의 원리를 관찰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관상학의 원리다.

자연 속에 하늘과 산과 강과 바다와 육지가 있듯이, 관상에서는 머리와 상체와 하체를 각각 천ㆍ지ㆍ인으로 본다. 또 얼굴을 상ㆍ중ㆍ하로 나눠 초ㆍ중ㆍ노년의 운세와 연결하거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각각 산천강하(山川江河)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한다.

손금은 얼굴 대신 손바닥에 나타난 소우주를 살핀다. 크게 그어진 3가지 기본선, 손의 전체적 굴곡 등에서 성공과 사랑, 결혼, 이별, 건강, 성격 등 갖가지 정보를 읽어내는 것이 수상학(手相學)이다.

다른 점과 달리 손금을 보는 것은 경험적 측면이 강하다. 누대에 걸쳐 수많은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등등의 손금을 살펴본 지혜가 쌓인 것이 오늘날의 수상학이다.

중요한 것은 관상이든 수상이든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상(相)은 심(心)에 따라 소명한다'고 말한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용모는 심성에 따라 변화한다고 보고, 상의 좋음을 구하기보다 덕을 쌓기를 강조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 점이 딱 맞았다구요? 실은 스스로 믿기 나름이죠

점이 미치는 효능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허튼 이야기인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왜 점에 빠지느냐"며 점 보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예언이 맞아떨어졌다고 한두 번 무릎을 친 이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점집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긴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여전히 점집이 성행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을 사로잡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인류학자에 따르면 미신이든 종교든, 초월적인 신과 사후세계를 믿으며 기도나 의식 등을 통해 사람의 앞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구상 어느 문화권에서나 발견된다.

그것도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아주 이른 시기에 생겨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이 인간의 생존과 번성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끔 하는 정서적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다.

인지과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제한된 정보를 신속하게 판단하게끔 진화하면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을 인과적으로 연결해서 해석하거나, 반복되는 패턴을 파악하고, 믿는 사실만 골라 보고 다시 믿음을 강화시키는 확인편향적 사고를 한다.

애매하고 뜬구름 잡는 식의 역술인의 이야기 속에서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것은 점을 보는 사람 자신이다. 한 번이라도 예언이 맞은 경험은 뇌리에 깊이 박혀 틀린 것은 잊고 맞은 것만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점은 경험적 근거를 확보한다.

하지만 점에 속아넘어가 큰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인간 사고의 또 다른 측면을 가동해야 한다. 바로 비판적 사고력이다. <설득의 심리학> 의 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에 따르면 광고나 선전에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흔히 잘 넘어가는 설득작전을 알고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야 한다.

가령 '한 달 이상 기다려야 예약이 가능한 족집게' '스타 아무개가 찾아온 점집'이라며 권위와 인기를 강조하는 평판은 시작부터 절반은 믿게 만든다.

명성에 연연하지 말고 재미삼아 본다는 생각으로 찻값 정도의 복채를 받는 곳을 찾는 게 좋다. 내가 큰 복채를 냈으니 그만큼 얻어가겠다는 심리가 작동할 수 있는데 이것도 위험하다.

스스로 점괘가 맞는 쪽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가장 정신을 차려야 하는 순간은 점쟁이들이 깎아준다거나 큰 위험을 막아주겠다는 식의 호의를 보일 때다.

사람들은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그 뒤에 이어지는 어떤 요구도 물리치기 어렵다. 더 큰 비용이 드는 무언가를 요구할 때 "나는 점쟁이에게 아무 것도 빚진 것이 없다"며 과감히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