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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예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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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예산실장

입력
2009.03.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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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의 육군준장 2명이 경제기획원 문희갑 예산실장방을 찾아와 다짜고짜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대한민국 군을 뭘로 알고 GNP(국민총생산) 6%로 돼 있는 방위비편성 기준을 함부로 깨뜨린단 말이오? 김일성이 쳐내려 와 빨갱이 세상이 되면 책임지겠소?" "말 다했소? 나라 걱정은 군인들만 하는 줄 아시오? 나라예산을 국방비에만 쏟아 붓고 복지정책 같은 것에 소홀하게 되면 그야말로 빨갱이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될 것 아니오?" 문 실장은 서슬 퍼런 장성들보다 목청을 높여 맞상대했다. (이장규 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참조)

▦군이 힘을 쓰던 5공 군사정권 시절 문 실장은 1985년도 예산안을 짤 때 방위비를 삭감했다. 국방예산은 예산관료들이 손댈 수 없는 성역이었으나 그는 두둑한 배짱으로 방위비에 칼을 댄 것이다. 방위비는 1979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GNP의 6%수준으로 유지키로 약속한 사항. 관례대로 하면 국방예산이 급증할 수밖에 없어 정상적 예산편성이 불가능했다. 그는 대통령을 설득해 'GNP 6%'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대통령은 "예산실장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니 더욱 소신껏 하라"고 격려했다. 고함을 친 두 장성은 좌천됐다.

▦나라살림의 곳간지기인 예산실장은 공직사회 '1급 중의 1급'으로 불릴 만큼 꽃 보직이다. 나라살림을 편성하고, 집행까지 감독하는 실무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예산실장은 과거 대한민국의 5대 실ㆍ국장(예산실장, 이재국장, 치안국장, 경제기획국장, 농정국장) 중 이재국장과 함께 가장 힘센 자리였다. 예산실장은 나라곳간을 관장하다 보니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을 자르는 악역을 맡았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약속한 재정 지출이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청와대를 찾아가 이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막강파워를 자랑했다.

▦경제위기를 맞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슈퍼 추경(30조원 이상)' 군불 때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모두가 나라곳간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류성걸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최근 실업자를 가장해 서울의 한 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 다른 실업급여 신청자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수급절차를 물어보고 교육도 받았다. 가장 힘센 1급 공무원이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가 일자리예산이 눈 먼 돈이 되지 않는 방안을 점검한 셈이다. 정치권의 무턱댄 다다익선 추경에 맞서 한 푼의 예산도 아껴쓰려는 곳간지기의 열쇠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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