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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차별화의 유혹

입력
2009.03.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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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미국도 전선에 부대를 둘 의미가 별로 없다. 군사전략적으로 극동에서 미국의 존재는 제7함대로 충분하다." 일본 안팎으로 커다란 파문을 몰고 온 오자와 이치로 일본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다. "미국이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게 아니라 일본 스스로 분명한 세계전략을 갖고 적어도 일본이 관계된 문제에는 더욱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논지는 분명하다. 1993년 <일본개조계획> 이란 책을 통해 '보통국가론'을 설파한 장본인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행 '평화헌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본이 안보와 대외관계에서 여느 보통국가와 다름없게 되고, 미일동맹을 실질적 대등관계로 끌어가고, 주일 미군의 규모와 역할을 축소하고, 그 공백을 일본의 역할 증대로 메우자는 주장이다.

시점이 참 공교롭다. 현재 일본의 정치상황은 '55년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非) 자민당 연립정권이 탄생한 16년 전과 흡사하다. 당시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시대가 열렸지만 실제 산파역은 오자와 대표의 몫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부각하기 위한 '보통국가론'은 주변국의 반발만 키웠을 뿐 정치적 성공을 안겨주진 못했다.

흔들리는 정치적 자신감

지금 그는 그 때 이후 가장 가까이 정권에 다가서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아소 다로 총리 내각 지지율은 9.7%까지 떨어졌다. 정계 은퇴 다짐을 풀지 않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제외하고 아소 총리를 대체해 지지율을 끌어올릴 만한 총리감도 마땅찮다. 반면 같은 여론조사에서 오자와 대표는 고이즈미 전 총리까지 누르고 '가장 적합한 차기 총리'로 꼽혔다. 아소 총리와의 1대1 비교에서는 40.6%대 16.3%의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점쳐질 만하다.

이런 절호의 정권 획득 기회를 앞두면 대개 역풍을 경계하며 튀는 언행을 삼가기 쉽다. 그런데 오자와 대표는 미일 양국관계와 아시아 이웃나라들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발언을 24, 25일 이틀이나 반복했다. 다수 유권자의 뇌리에 미일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뿌리를 내린 상황이어서 일본 국내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일부 강경 보수파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도 잃는 게 더 많다. '정계의 너구리'로 불릴 정도인 그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그의 모습에서 맨 앞에서 달리면서도 오랜 패배 경험 때문에 결승점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이 약해지고, 불안에 다리가 흔들리는 달리기 선수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 심리상태가 되면 남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강조하려는 차별화 유혹에 시달리기 쉽다. 일종의 강박이어서 결과에 대한 냉철한 고려는 도외시한다. 그의 발언은 아소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상대가 되어 미일동맹 강화를 다짐한 것과 때를 같이 했다. 아소 총리의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될 미일 정상회담을 의식, 극단적 차별화를 시도한 것은 아닐까.

정권에 근접한 오자와 대표가 차별화 유혹에 흔들릴 정도라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참패한 우리 민주당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난 연말부터 계속해 온 '법안 저지 투쟁'도 어떻게든 한나라당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드러낸다. 정부가 성공하면 야당의 협조는 잊혀지는 게 세상 인심이다. 무리한 반대에 잠시 눈살을 찌푸릴 국민은 있어도, 정부가 '야당의 생떼'를 가지고 정책 실패를 변명할 수도 없다. 합리적 원내 대책으로 존재감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무력감까지 감안하면 법안 저지만한 게 없다. 지지세력 결집에도 도움이 된다.

지지세력 결집이란 함정

그러나 핵심지지세력의 결집은 여당 지지세력의 반사적 결집만 불러 민주당의 정치적 부활을 가로막는다. 민주당 지지율이 좀처럼 늘지 않고, 여당의 상임위 단독상정이나 민주당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 등의 정책이 잠자고 있다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큰일 날 소리'조차 과거처럼 벌떼 같은 비난을 부르지 않는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됐다. 그래야 현재의 정치적 함정에서 빠져 나올 희망이라도 생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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