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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름도 욕망도 부질없어지는… 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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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름도 욕망도 부질없어지는… 보길도

입력
2009.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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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꿈꾼 적이 있는가.

땅끝에서 바라본 먼 바다의 섬, 전남 완도군에 속한 보길도는 한 개인의 낙원이었고 유토피아였다. 고산 윤선도가 꾸었던 꿈의 그늘이 지금껏 드리우고 있는 섬이다.

치열한 당쟁에 밀려 유배지를 떠돌던 고산은 병자호란 직후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을 결심으로 제주로 향했다. 그러다 들른 보길도의 수려한 산세에 반해 아예 눌러앉기로 했고, 이곳에 그의 낙원을 조성했다.

보길도 보길초등학교 인근에는 고산의 꿈을 집약시켜 놓은 정원 부용동 원림이 있다. 논에 물을 대듯 개울물을 막아 세연지란 연못을 만들고, 그 연못 가운데에 섬을 또 만들어 지은 정원이다. 연못 건너편엔 춤추는 무대(동대와 서대)까지 만들었다.

커다란 바위들을 스치고 자연 계곡처럼 흐르는 못이 세연지이고, 그 물길을 이어서 장방형으로 만든 인공못이 회수담이다. 이 자연못과 인공못 사이에 팔작지붕을 얹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우아한 세연정 건물이 들어앉았다. 5년에 걸쳐 조성했다는 이 정원의 호화스러움은 고산이 당시 조선 최고의 거부였던 해남 윤씨 가문이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고산은 이곳으로 친지를 불러 자주 연회를 열었다. 풍악이 울려 퍼지면 동대와 서대에선 곱게 차려입은 기생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고산은 또 세연지에 배를 띄워 노복들로 하여금 그가 지은 '어부사시사'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세연지의 바위들을 섬으로 여기며 뱃노래를 즐긴 것이다. 그야말로 별천지, '그만의 왕국'인 셈이다.

무희들이 춤췄던 동대와 서대는 지금 동백이 짙게 우거져, 연분홍 치맛자락 대신 동백꽃이 붉은 춤을 추어댄다. 세연지의 맑은 물 위엔 노송과 동백나무가 굵은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동백도 그 물 위에 붉은 꽃을 그려내다 성에 차지 않는지 꽃봉오리째 풍덩 제 몸을 던져 직접 수면에 꽃무늬를 수놓고 있다.

부용동 원림을 다 둘러봤으면 4km 가량 떨어진 동천석실에 올라보자. 동천석실은 해발 100여m 안산 중턱에 고산이 세운 공부방이다. 윤선도는 이곳에도 석간수를 모아 연못을 조성하고 집을 지어 책을 읽었고 바위에 도르래를 매달아 아래에서 음식을 받아먹었다고 한다. 바위 벼랑 위에 지은 정자에 올라보면 고산은 신선처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윤선도의 왕국인 보길도엔 그의 정적이었던 우암 송시열의 자취도 남아 있다. 우암도 제주도 가는 길 이 섬에 들르게 된다. 유배길의 우암이 씁쓸한 심경을 노래한 것이 바위에 남았다. 백도마을 끝자락의 '글씐바위'다.

보길도 예송리와 보옥리에는 파도 소리 아름다운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보옥리의 자갈은 알이 굵어 공룡알 해변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완도의 몽돌해변 중 최고는 역시 본섬 정도리의 구계등이다. 갯돌층이 아홉개의 계단을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돌의 크기가 위치에 따라 손톱만한 것부터 머리통 만한 것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구계등 해안 뒤로는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정도리의 경작지를 보호하기 위해 수백년 전 심은 인공숲이다. 나무 사이로 자연관찰로가 잘 놓여져 있다.

정도리의 경작지는 국내선 유일한 협동농장이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 경작, 공동 관리하는 농지다.

■ 여행수첩/ 보길도

● 지난해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 다리가 연결되면서 보길도 찾는 길이 더욱 빨라지고 편해졌다. 완도 본섬 화흥포항에서 노화도 동천항을 잇는 배편은 오전 7시~오후 5시 20분 하루 10편(왕복 20회) 출항한다. 뱃삯은 성인 5,700원, 승용차는 1만6,000원이다. 동천항 (061)553-5635

● 동천항에 내려 노화도의 중심인 이목항을 지나 보길대교를 건너면 보길도다.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421

완도=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길에서 띄우는 편지/ 완도에서

바닷속 목욕탕을 들어보셨는지요.

완도읍에 있는 완도관광호텔에는 수중목욕탕이 있습니다. 호텔 별관에 지어진 이 해저 해수탕에 들어서면 창문 밖으로 바닷물이 넘실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조 때는 창문 바닥에 찰랑이고 만조 때는 사람 키를 넘게 물이 차오르는 곳입니다. 아마도 바닷고기가 사람의 알몸을 구경하는 목욕탕은 이곳이 국내서 유일할 것입니다.

이 목욕탕은 호텔 설립자(2006년 작고)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그는 수십억을 들여 물막이 공사 등 다양한 토목 기법을 동원해 바닷속 목욕탕을 만들어냈습니다. 주민들은 그를 '완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엉뚱해보이기도 한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모았습니다.

호텔 주변도 그의 도전적인 매립 공사를 통해 지금의 시가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닷가 허허벌판을 도시화한, 한 개인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도시계획인 셈입니다.

김씨는 이 호텔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자체 발전을 조달하려고도 했습니다. 비록 한 달도 못 가 고장나긴 했지만요. 그의 무모한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직접 구상하고 제작했던 요트는 진수식 때 바로 물 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큰 그물을 드리우고 여러 배가 한꺼번에 건져올리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겠다 싶어 제작했던 초대형 그물은 너무 무거워 바다로 싣고 나가질 못해 용도 폐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도전 정신으로 수백억의 재산을 날렸으면서도 끝까지 또 다른 꿈을 계획했었답니다.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바라봐서일까요. 완도의 하늘은 그와 같은 벤처정신이 꿈틀거리는 듯 보였습니다. 섬으로 이뤄진 완도를 전남에서 가장 부자로 만든 건 이런 도전정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풍요를 키운 전복의 양식도 처음엔 큰 모험이었습니다. 십여 년 전 처음 전복 양식을 시작했을 때 남들은 비웃었습니다. 3,4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양식으로 과연 돈이 되겠느냐는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될 수 있다'는 확신은 결국 지금의 고부가가치 '전복의 완도'를 일구어냈습니다.

드라마 '해신' 세트장 유치도 처음엔 장애물이 많았던 사업이었답니다. 너무 멀고 외진 땅이라 유치가 쉽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같은 유치작전을 펴서 차려낸 세트장은 드라마의 인기를 업고 큰 히트를 쳤고, 완도는 또 영상 관광산업이란 새 장을 열었습니다. 드라마 방영 당시 하도 많은 이들이 완도를 찾아와 섬이 가라앉을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요즘 불황의 그늘이 워낙 짙다 보니 다들 의기소침해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불황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도전정신마저 잃게 되는 건 아닐까요. 해저 해수탕 유리창 밖에서 제 알몸을 빤히 바라다보고 있는 물고기 떼를 쳐다보며 든 걱정이었습니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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