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는 큰 사고를 내도 '중대과실'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면책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1982년 시행된 특례법이 운전자 보호에 치우쳐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교통사고율 세계 최고'에 이르도록 조장한다는 비판을 마침내 수용한 점에서 획기적이다. 당장 새로운 처벌기준 마련이 급하지만, 그릇된 운전습관과 책임의식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문제의 면책조항은 우리 사회가 '자가운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교통사고 처리를 신속히 하고 전과자 양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제정됐다. 종합보험 가입을 유도해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도 컸다. 그러나 사망사고와 뺑소니 및 과속ㆍ신호위반ㆍ중앙선 침범 등 10가지 중과실이 아니면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공소권을 배제한 것은 외국에도 유례가 없다는 논란이 많았다. 이번 헌법소원사건의 피해자처럼 심각한 장애 후유증을 남긴 가해자를 기소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사법정의에 반한다는 지적이었다.
종합보험을 면책기준으로 삼은 것은 형편이 어려운 운전자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요소도 있다. 이런 여러 측면의 헌법적 결함은 1997년 헌재 재판관 5명이 위헌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뚜렷해졌다. 그런데도 제도 개선을 미루는 사이, 교통사고 증가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면책조항 때문만은 아니지만, 사고 운전자를 과잉 보호하는 것이 안전운전 의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 것은 분명하다. 큰 사고를 내고도 뒷처리를 보험회사에만 맡기는 세태가 인륜을 해치고 보험제도 운영까지 압박하는 실정이다.
헌재 결정은 입법 목적에서 크게 빗나간 현실의 모순을 바로잡는 의의가 크다. 구체적 개선책은 헌재 심리에서도 제시됐다. 제도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편익을 위해 우리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존엄한 가치와 권리를 스스로 가볍게 여긴 잘못을 함께 반성하는 것이다. 그게 헌재 결정의 진정한 뜻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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