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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해외서 더 유명한 '핸드볼의 조던' 윤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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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해외서 더 유명한 '핸드볼의 조던' 윤경신

입력
2009.03.0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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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신. 국내에선 아직도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다. 하지만 세계 핸드볼계에서는 축구의 펠레, 농구의 마이클 조던에 비견될 만한 슈퍼스타다.

경력부터 화려하다. 경희대 졸업과 동시에 96년 세계 최고리그로 꼽히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2년간 7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97년부터 2002년까지는 전무후무한 득점왕 6연패를 달성했고, 분데스리가 통산 2,908골로 최다득점 기록도 세웠다. 2000~01시즌 324득점은 단일 시즌 최다득점 기록.

2001년 국제핸드볼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뽑힌 건 당연한 결과였다. 2002~03시즌 그의 득점왕 7연패를 막기 위해 각팀 에이스에게 페널티스로를 몰아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당시 득점왕이었던 크리스티안센의 페널티스로는 역대 최다인 121개였다.

지난해 13년 만에 두산 유니폼을 입고 국내 복귀하더니 핸드볼큰잔치 6번째 시즌 만에 역대 최다득점 기록도 '가뿐히' 갈아치웠다. 개인통산 547골로 핸드볼큰잔치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윤경신(36)을 24일 경기 의정부의 두산 숙소 근처에서 만나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장훈이 라이벌? 어쩌면

키 203㎝. 국내에서 인기가 있는 농구나 배구에 눈 돌렸을 법도 하다. 대학시절 농구 동아리에서 활약하며 진짜 경희대 농구팀과 맞붙어 이긴 적도 있다. "내가 농구를 했다면 서장훈이랑 라이벌이 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비인기종목 핸드볼을 택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사실 처음 핸드볼을 접한 숭덕초 5학년 때만 해도 그는 평균키에 그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키가 크기 시작하더니 대학교 2학년까지 계속됐다.

큰 키가 콤플렉스였던 적도 있었다. "버스에서 환풍구 아래 서 있다가 급정거할 때마다 부딪히곤 했어요. 한번은 전철에서 작아 보이려고 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는데, 아이들이 다리 사이로 뛰어 놀더라고요." 콤플렉스는 어느새 그의 무기가 됐다. 흔치 않은 왼손잡이에 장신을 이용한 고공 슈팅은 단연 위력적이었다.

대를 이어 핸드볼? 글쎄

핸드볼을 시작할 무렵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막연히 '공부 때문에'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된 건 먼 훗날이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도 핸드볼 선수였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골키퍼로 뛰었죠." 역시 '타고 난' 피라고 해야 할까. 동생 윤경민(30ㆍ충남도청)도 핸드볼 선수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 재준(4)이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한데볼'로 불리는 핸드볼에서 그는 그래도 혜택 받은 사람이다. 함부르크에서 뛰던 지난해 그의 연봉은 35만유로(당시 약 5억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유럽에서는 시키겠다"였다. "국내에서 핸드볼은 하는 일에 비해 대우를 못 받는, 굉장히 힘든 종목이에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농구가 낫지 않겠어요?"

독일에서 핸드볼의 인기는 거의 축구 다음이다. 1부리그 18개팀 등 5부리그까지 무려 3,000여개팀이나 된다. 평균 관중수는 5,000~6,000명, 인기 라이벌전엔 2만명도 몰려든다. "핸드볼큰잔치 개막전 때 관중이 많아서 기대했는데 '반짝'으로 끝난 게 너무 아쉬워요."

기록의 사나이? 노메달인데

화려한 경력이지만 올림픽은 노메달이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네 차례 본선 무대를 밟아 6위(92년)가 최고 성적이었다. 미련이 남을 법도 하지만 그는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우리나이로 서른 일곱이니 은퇴를 생각할 나이도 됐다. 1년 후배 홍기일이 두산 코치이고, 코트에선 띠동갑 나는 새까만 후배들과 부대껴야 한다. 함부르크의 연장 제의를 뿌리치고 온 그이니 특별히 돈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3월부터는 학업도 병행한다. 모교인 경희대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해 박사학위까지 도전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기 위해서 한국에 돌아온 게 아니다. "핸드볼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다. 내가 돌아왔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지만 핸드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상이 없는 한 5~6년은 더 뛰고 싶어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거든요." 아직은 창창하기만 한 서른 일곱이다.

의정부=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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