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은 차분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취임 1주년인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소회와 포부를 밝혔으나 이 대통령은 별도 행사를 갖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오전 8시10분께 부인 김윤옥 여사의 배웅 속에 본관으로 출근, 부속실 직원들의 일정 보고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에 들어갔다.
대신 이 대통령은 1년 전 취임식 때의 옅은 옥색 넥타이를 자신이 직접 꺼내서 매고 출근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분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대통령은 오전 확대비서관회의에서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열심히 일했지만 실수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며 "지난 1년을 교훈삼아 심기일전의 자세로 일하자"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지난 1년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5년 국정운영의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되, 일희일비하거나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표정은 비장했다고 한다.
회의 말미에 이 대통령은 "3, 4년 후 대한민국이 여러 악조건을 뚫고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면서 "그것이 나의 꿈이자 여러분의 꿈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회의장은 이 대통령이 떠난 뒤에도 한동안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눈길을 끈 행사는 국무회의. 매번 오전에 열리던 국무회의가 만찬을 겸한 토론회로 바뀐 것. 국무위원 보고와 대통령 지시로 서둘러 마무리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을 해 보자는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변경됐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가 필요하다"며 "장관들은 마지막 봉사의 자세로 위기극복에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집중토론이 이어진 국무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당의 협조를 구해야 할 사안은 미리 알려 주고 설득하는 당ㆍ정ㆍ청 협조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과,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공무원들이 혼(魂)을 가져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공감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끝난 뒤 밤 10시께 회의 자료를 챙겨 관저로 돌아갔다. 평소처럼 각종 보고서와 회의 자료를 다시 검토하느라 대통령 관저의 불은 자정이 넘어서야 꺼졌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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