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점 여주인 납치사건 때 경찰이 범인에게 인질 몸값으로 건넨 수사용 가짜지폐가 시중에서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찰은 사건 발생 후 보름이 지나도록 범인을 잡지 못해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범인이 조기에 검거되지 않을 경우 화폐 유통질서에도 상당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4시20분께 서울 종로구 종로3가 한 포장마차에서 30~4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어묵을 먹고 만원권 1장을 내려다 거스름돈이 없어 옆에 있던 손님 최모(36)씨가 5,000원권 2장으로 바꿔줬다. 최씨는 이후 자신이 받은 지폐의 종이 재질 등이 이상한 것을 알아채고 남자를 찾았으나 이미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종로지구대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 돈이 납치범에게 건네진 수사용 가짜지폐(일련번호 EC1195348A)라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납치범이 처음으로 포장마차에서 시험 삼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범인이 17일 오후 6시15분께 250cc 오토바이를 사면서 가짜지폐 700장을 사용한 시점보다 2시간 가량 앞선 것이다.
지난 21일 오후 5시께도 종로구 장사동 한 복권방 주인이 손님에게서 받은 만원권 1장을 이틀 뒤 은행 현금인출기를 통해 입금하려다 입금되지 않자 문제의 가짜지폐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2일에도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슈퍼마켓에서 문제의 가짜지폐 1장이 발견된 바 있다.
특히 납치 용의자 정승희(32)가 가짜 지폐 사용에 앞서, 인질 몸값을 받고 경찰을 따돌린 다음날인 12일 대구에 사는 친구 신모(34)씨에게 택배로 가짜지폐 2장을 전달했던 것도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신씨에게 '중국에서 제작된 위폐'라고 속이고 처분을 상담한 뒤 가짜지폐를 보냈는데, 신씨가 납치 사건 뉴스를 보고 2장 다 소각해 버렸다"고 말했다. 정씨가 가짜지폐 처분을 위해 상담까지 할 정도로 용의주도하게 사용하고 있어, 가짜 지폐가 시중에 광범위하게 유통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수사팀을 양천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로 확대하고 신고보상금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높이는 등 범인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가짜지폐 유통에는 뾰족한 방지대책을 내놓지 못해 경찰의 허술한 수사기법과 사후 대응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가짜지폐로 인한 피해방지 노력보다는 사실을 감추려고만 해왔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지난 17일 범인이 오토바이 구입을 위해 처음 가짜지폐를 사용했을 때 가짜지폐의 특징을 상세히 공개하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했다. 이에 앞서 같은 날 포장마차에서 가짜지폐가 발견된 사실을 신고 받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은 "수사상 필요에 의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되레 제2, 제3의 피해만 불러 시민 불안만 키웠다.
내부 수사 공조도 허점이 노출됐다.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24일 오후까지 서울경찰청이나 가짜지폐가 발견된 중랑서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22일 슈퍼마켓 가짜지폐 신고를 받고도 이틀간 공조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장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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