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타계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소장품 경매에 전세계 미술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23일부터 3일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진행되는 이번 경매에는 이브 생 로랑과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78)가 평생 수집한 소장품 732점이 선보였다. '세기의 세일(The Sale of the Century)'로 이름 붙여진 이번 경매는 첫날부터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경매 주관사인 크리스티측은 3일 하루에만 무려 2억620만유로(약 3,960억원)어치가 팔려 하루 낙찰가로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개인 소장품 경매의 최고 기록은 1998년 빅토르&샐리 갠츠 소장품 경매로 총 1억6,300만유로 규모였다.
3일 낙찰된 작품 중 앙리 마티스의 '푸른색과 핑크빛 양탄자 위의 꽃병'은 3,200만유로에, 이브 생 로랑의 드레스 디자인에 큰 영감을 줬던 피에 몬드리안의 1922년작 '파랑, 빨강, 노랑, 그리고 검정의 조화'는 2,160만유로에 팔렸다. 하지만 최고 낙찰가가 점쳐졌던 파블로 피카소의 '탁자 위의 악기'는 유찰됐다. 크리스티측은 3일간 낙찰가가 최고 3억5,000만달러(약 5,200억원)를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이번 경매를 계기로 중국과 프랑스 간의 갈등도 뜨거워지고 있다. 경매에 나온 소장품 중 아편전쟁 당시 청나라가 약탈당한 문화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매에 앞서 프랑스 파리 법원은 23일 이브 생 로랑이 소장하고 있던 중국 문화재 2점의 경매를 중지하고 이들 문화재를 중국으로 반환해달라는 유럽중국문화재보호연합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경매에 나온 호가 1,000만유로(약 200억원)의 쥐머리, 토끼머리 동상 2점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1860년 베이징(北京)을 침공하면서 청 황제의 여름 궁전 원명원(圓明園) 내 서양식 분수의 장식물인 12지 형상 동상을 약탈했는데 그 가운데 2점이 이번 경매에 나온 것이다.
당시 12점 모두가 반출됐으나 중국 정부와 부호들은 해외 경매 등을 통해 8개 동상을 다시 가져왔지만 나머지 4개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중국인들은 건륭 황제가 원명원을 세계 최대 궁전으로 확장하면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화려했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서양식 궁전을 지어 서양을 제압하려 했던 역사적 배경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달라이 라마 접견 사건을 계기로 중국 내 반 프랑스 정서가 강해지자 중국 측은 동상 경매에 예상을 뛰어넘는 강한 제동을 걸었다. 중국 정부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행동으로 훼손된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프랑스가 잘못을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ounglee@hk.co.kr
차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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