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얼굴 없는 탈북 화가로 알려진 선무(36)씨의 과거와 현재를 21일 자세히 소개했다. 북한의 현실을 묘사하고 북한 사회를 풍자한 그림을 그렸지만 한국 사회에서 오해를 받은 사연도 곁들였다.
선무씨는 1998년 탈북한 후 중국과 라오스, 태국을 거쳐 2001년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홍익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각종 전시회에 작품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선무씨는 북한에 남겨둔 가족의 안전을 염려해 얼굴 사진을 찍지 않고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서 군복무를 할 때 미군 병사의 혀를 잘라내거나 일본군을 무찌르는 장면, 북한군에 쫓겨 도망치는 남한군인의 모습 등 체제 선전용 그림을 그렸다. 한국에서도 선무씨의 작품 소재는 대부분 북한과 관련됐고 때로 용공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9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비엔날레에서 그의 작품이 막판에 전시가 취소됐다. '조선의 태양'이란 제목으로 김일성 초상화를 그렸는데 주최측이 정치적 논란을 우려해 작품을 떼어낸 것이다. 2007년 전시회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담은 '조선의 신'이라는 초상화에 대해 일부 관람객이 반발했다. 북한 인공기가 뒤집혀 있는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는 "나는 절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내 작품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선무씨의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행복한 어린이' 시리즈도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림은 붉은 깃발을 배경에 두고 유치원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복제인간처럼 똑같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 모두는 행복한 어린이"라고 외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선무씨는 이에 대해 "그들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집단주의에 대해 풍자했거나 북한 주민들이 느끼는 무력감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해석한다.
그는 군복 대신 나이키와 아디다스 스포츠 의류를 입고 헐렁한 조깅화를 신은 김정일 위원장(사진)의 모습도 그렸다. 근엄한 지도자의 모습 대신 부르주아 냄새가 풍기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부모님이 아직도 북한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북한의 현실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미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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