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초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A양은 요즘 "스무 살 대학생 오빠와 사귄다"며 친구들에게 으쓱댄다. 160㎝가 넘는 키에 제법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여기에 살짝 화장까지 하면 A양은 초등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운 외모다. "또래 남자 애들은 유치하다"는 A양을 보며 친구들은 "키스까지 했다더라"고 쑤군대면서도 부러운 눈치다.
또 다른 예비중학생 B양은 지난해부터 이미 중학생 언니들과 어울리며 노래방과 호프집을 드나들고, 중학생 오빠와도 교제 중이다. 홈페이지에는 오빠와 뽀뽀하는 사진과 함께 "사랑해"라는 글을 크게 걸어놓았다. 술 마시고 담배까지 피우는 B양을 담임교사가 타일러도 봤지만, "선생님이 왜 간섭하냐"며 도리어 짜증을 내 담임도 속수무책이었다.
성숙해지는 몸의 변화와 함께 불안, 반항, 독립심, 그리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뒤엉킨 혼돈의 사춘기. 과거 중학생 때나 찾아왔던 그 질풍노도의 로켓이 이젠 이르면 초등 5학년, 본격적으로 6학년 때 점화되고 있다. 초등 6학년을 '초딩'이나 '어린이'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무엇보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며 몸부터 달라졌다. 질병관리본부의 2007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중ㆍ고등학생의 초경 평균연령은 초등6(12세)과 중1(13세) 사이인 12.4세였다.
20여년 전 중2 무렵에 하던 초경이 대부분 6학년 때로 내려온 것이다. 의학계는 남학생들도 12세를 전후로 남성호르몬이 분비돼 고환이 커지고 음모가 발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른의 몸을 갖춰가는 사춘기의 첫 관문은 역시 이성교제다. 요즘은 개방된 성 문화와 인터넷 탓에 상당한 스킨십에다 '삼각 관계' '실연의 상처' 등 고민도 적지 않다.
예비중학생 허모양은 "한 반에 커플이 한 둘씩 있지만, 대개는 내색 안 하고 몰래 사귀는 편이다"며 "남자친구가 통 전화를 안 해 다른 애랑 사귀는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친구들이 알아봐준다"고 전했다.
문자로 '사랑해'를 주고 받고, 커플 티를 챙겨 입고, 미니홈피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이들의 연애는 일부만의 예외가 아니다.
서울 N초교 송모 교사는 "여학생들이 더 적극적이어서 아예 중고등학교 오빠들과 교제하는 경우도 많다"며 "예전에는 성인문화의 흉내내기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자신들의 문화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한국일보가 지난해 11월 서울 초등 6학년 2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3%가 이성친구가 있다고 응답했다. 스킨십을 어디까지 해봤냐는 질문에는 20.6%가 포옹, 14%가 뽀뽀, 4%가 진한 키스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또 이성교제에 긍정적인 이유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우리도 사랑을 느낀다"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다"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고 응답했다.
자존심이 커져 부모나 교사의 구속과 규제, 금기에서 벗어나려는 경향도 강해졌다. 목동 학원가에서 만난 예비중학생들은 한결같이 "이제 어린이가 아니다" "요즘은 누가 혼자 있는 걸 방해하면 짜증이 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특히 6학년이 학교 내 최고 학년이다 보니 사춘기적 자존심이 경쟁심을 넘어 폭력성으로 돌변하기도 쉽다.
예비중1 강모군은 "6학년이 되니까 덩치 좋은 애들 위주로 '짱 놀이'라고 싸움을 해서 순위가 정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O초교 구모 교사는 "6학년생들이 자기들끼리 파벌을 만들어서 5학년들 상대로 집단으로 군기를 잡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청소년유해환경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중학생들은 학교폭력을 처음 경험한 시기나 호프집ㆍ소주방ㆍDVD방에 처음 간 때, 첫 성적 접촉 및 첫 음주 시기로 모두 초등 6학년을 1순위로 꼽았다. 6학년이 바로 '어른들의 세계'에 폭발적으로 눈을 뜨는 시기라는 얘기다.
문제는 초등 6학년이 '아동'도 '청소년'도 아닌 틈새에 끼어 적절한 보호 및 관리를 받지 못해 자칫 잘못된 길로 빠져들 유혹의 손길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 대상 각종 조사, 청소년 성상담, 청소년 쉼터 등 모든 청소년 정책은 13세 이상을 대상으로 해, 사춘기 초등학생에 대해서는 변변한 통계조사조차 거의 없다.
가출 청소년들을 상담 지원하는 서울시립 이동청소년쉼터 관계자는 "2005년만 해도 초등생이 찾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상담을 해도 수치로 잡아두지 않았다"며 "지난해부터 초등생이 부쩍 늘어 올해엔 본격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쉼터를 찾은 한 여학생이 가출 후 성매매로 용돈을 마련하다 언니들에게 돈을 갈취 당한 사연을 털어놨는데, 처음에는 고등학생인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초등학생인 걸 알았다"며 "가출 초등생이 선배들과 어울려 잠자리를 갖거나 원조교제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김성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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