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서울대 자연대가 주최하고 포스코가 협찬한 '제16회 청소년을 위한 자연과학 공개강좌'가 23일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전국 초ㆍ중ㆍ고교생 및 일반인 1,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강연은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ㆍ1809~1882)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을 맞아 진화론과 그의 발자취를 현대적 관점에서 되짚어보기 위한 자리였다. 종의>
강연자들은 다윈을 마르크스, 프로이드와 함께 근대 지성계를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했다. 또 그의 이론은 현재까지도 생물학을 넘어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의학 등 전 분야로 확장, 응용되는 통섭 학문이며, 그가 주창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다윈의 자연선택은 과거에는 가설이었지만 이제는 이론이며 법칙에 가까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조건으로 ▲변이 ▲세대간의 유전 ▲엄청난 생명력과 생존경쟁 ▲번식력의 차이를 꼽고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진화가 안 일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 종(種)에 속하는 개체들 간에 변이가 존재하며, 이 변이는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개체들 간에는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이 보다 많이 생존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최 교수는 "DNA 구조로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생물의 형질은 세대를 거치면서 조상의 형질로부터 변화한다는 것이 다윈의 자연선택의 핵심"이라며 "진화는 곧 변화"라고 말했다. 김희준 서울대 화학부 교수 역시 "진화론은 빅뱅우주론, 양자론 등에 버금 갈 만큼 확고한 과학 이론으로 자리잡았다"고 평가했다.
다윈의 대작 <종의 기원> 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비글(Beagle)호 여행의 결과물이다. 이 여행을 통해 진화론의 기반이 된 핀치새(Pinch)를 비롯해 거북이, 흉내집빠귀새 등을 수없이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의>
그는 770쪽의 일기, 1,383쪽의 지질학 노트, 1,529종에 대한 카탈로그, 3,907종의 뼈, 가죽, 표본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으며, 이는 곧 <종의 기원> 의 데이터였다. 종의>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는 노예제의 잔인성도 큰 몫을 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홍성욱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교수는 강연에서 "다윈은 인간의 종류가 다양할 뿐이지 인간 사이에 계급이나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며 "모든 인간이 하나의 조상에서 나와 서로 다른 식으로 진화했다는 생각은 노예제에 대한 혐오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종의 기원> 은 출판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다윈은 1856년 <자연 선택> 이라는 제목의 방대한 저술을 시작했지만, 애초 계획한 저술을 포기해야 했다. 영국의 생물학자 월러스가 1858년 다윈에게 보낸 논문에서 종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얘기했는데, 이 결론이 다윈의 결론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자연> 종의>
홍 교수는 "다윈은 동료들의 중재를 통해 지금까지 써온 자신의 논문 초록과 월러스의 논문을 린네 학회에서 함께 발표할 수 있었다"며 "이후 자신이 계획하던 방대한 저술을 포기하고 요약본을 서둘러 집필, 1859년 11월 24일 <종의 기원> 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고 전했다. 종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진화론만큼 대내외적으로 치열한 논쟁에 자주 휘말린 이론도 없을 것"이라며 현대 진화론의 해결되지 않은 쟁점들을 소개했다. 장 교수는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고 스티븐 제이굴드가 진화론의 '용호상박'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저서 <이기적 유전자> 로 잘 알려진 도킨스 쪽은 "진화는 생명체가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임을 강조한 반면, 저술가로 유명한 제이굴드 측은 "진화란 치밀한 계획이라기보단 부산물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기적>
이에 대해 장 교수는 "양 진영의 논쟁 덕분에 현재 진화론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며 과학에서 생산적 논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 이종섭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청소년들이여, 발상의 전환을!
"다윈은 21세기에 요구되는 통섭 학문을 이미 150년 전에 이뤘던 사람입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한 지식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다는 진리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배웠으면 합니다."
이종섭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은 23일 오전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 공개강연'에서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다윈이 주창한 '자연선택' 이론 자체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윈이 연구에 임한 隙愍?자세를 본받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윈을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평가한 이 학장은 "그의 사상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도입될 수 있다"며 "이는 다윈이 단순히 현상을 관찰한 뒤 의문을 갖고 원리를 규명하는 과정을 떠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통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장은 다윈이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이라는 진리를 발견한 배경에는 비슷한 시대의 정치ㆍ경제학자인 맬더스의 인구론을 비롯해 동일과정설, 식물의 육종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적 통섭을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진화 생물학은 물론이고 진화 심리학, 진화 경제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까지 다윈의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덧붙였다.
이 학장은 2009년 청소년을 위한 자연과학 공개 강연의 주제를 다윈으로 정한 이유도 통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학장은 "다윈이 보여준 발상의 전환은 현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과학의 원리"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종(種)이 끊임 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였다"며 "다윈이 보여준 발상의 전환을 우리 청소년들도 받아들여 과학도의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 강연 이모저모
겨울 방학을 맞아 2월 내내 한가했던 서울대 관악캠퍼스가 23일 자연대 공개강연으로 모처럼 활기를 띄었다. 특히 단체로 수강 신청한 지방 고교의 학생을 태운 전세 버스는 수 십여대가 오전 9시무렵부터 서울대에 속속 도착했다.
대부분 교복 차림인 이들 지방 학생들은 교내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은 뒤 오후 1시 강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호기심과 동경 어린 눈으로 캠퍼스를 둘러봤다.
서울대 측에 따르면 올해 강연 참가자는 지난해 보다 300여명이 늘어난 1,800여명에 달했는데, 전국 62개 학교에서 단체 신청해 참가한 학생ㆍ교사는 1,100여명이었다.
개인적으로 수강을 신청한 700여명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 단위 참가자였다. 고2와 중3 두 아들과 함께 온 우경희(43ㆍ경기 수원)씨는 "집에서 구독하는 한국일보의 '다윈은 미래다' 시리즈를 통해 이미 예습을 하고 왔다"며 "다윈 권위자인 장대익, 최재천 교수님 강연이 특히 기대된다"고 말했다.
세 아들과 함께 한 김양렬(43ㆍ경기 김포)씨도 "아이들이 생물학에 관심이 많다. 이번 강연으로 생물학의 기본인 진화론의 여러 학설을 두루 접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청소년 수강생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강연에 나선 교수들도 어려운 학술 용어보다는 시각물과 알기 쉬운 사례를 사용해 관객과의 '눈높이 맞추기'에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 '스타 강사'들에게는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사인 공세가 밀려들기도 했다.
청중들의 수준도 녹록지 않았다. 기독교 재단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안상옥(18)군은 "창조론을 믿긴 하지만, 진화론도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과학영재학교 김한빛(18)군은 "진화를 종교와 접목해 설명하려는 김희준 교수의 강의가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서울대 자연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경북 영덕군에서는 군내 고교생 숫자(4개교ㆍ850명)의 5%에 육박하는 32명이 대거 상경해 눈길을 끌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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