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남녀간의 사랑이 행복의 원천이라 노래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남녀 사이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독한 불행감을 안겨 준다. 온갖 증오와 분노, 심지어 범죄까지도 애정 문제에서 비롯된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책을 펴고 사랑과 관련된 제목들을 살펴보라. 온통 이별, 슬픔, 아픔, 미움, 외로움, 배신의 단어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사랑때문에 행복하거나 즐겁다는 가사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이쯤 되면 행복의 최대의 적은 남녀간의 사랑 문제라고 할 만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동안 약 34만 쌍이 혼인했고 12만 쌍이 이혼했다. 이혼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아이들과 직장 문제, 사회적 시선 등 때문에 그냥 같이 사는 '무늬만 부부'인 경우도 놀라울 정도로 많다. 왜 한때 사랑했던 배우자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의사 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내용과 관계에 대한 언급으로 이뤄진다. 말에는 내용적 측면과 관계적인 측면이 있다.
교수인 내가 조교에게 "이것 좀 복사해 와라"라고 말할 때, 내용적으로는 '복사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한편 이 말은 관계적인 측면에서 보면 '나는 선생이고, 너는 조교다. 내가 윗사람이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얼마 전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된 후배가 있다. 신혼인 그는 거의 매일 일찌감치 퇴근하여 새색시인 부인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것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배가 많이 고팠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서는데, 부인이 식탁을 차리고 있다. 맛있는 냄새도 난다. 반가운 마음에 그는 부인을 보자마자 "배고파 밥 줘"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아내는 즉시 삐치기 시작한다. 식탁 위에 그릇을 내동댕이치듯 세게 내려 놓는다. 남편은 '부인에게 뭔가 언짢은 일이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분풀이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최초의 부부싸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 후배 입장에서 볼 때, 밥은 늘 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부인이 식사를 차려주는 것인데 그냥 별 뜻 없이 밥을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뿐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커뮤니케이션의 관계적 차원에 특히 민감하다.
식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는데 첫 마디가 "여보 사랑해, 별 일 없었어?" 등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배 고파 밥 줘"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밥순이냐? 여기가 식당이냐?"라는 반감이 순간 생겨난다. "배 고파 밥 줘"라는 동일한 메시지에 대해 남편은 내용 측면만을 생각하고, 아내는 관계적 측면을 주로 생각한 결과다.
인간 관계 갈등의 대부분이 이러한 인식 차이에서 발생한다. 부부 사이뿐 아니라 부하와 상사 간이나 혹은 친구 간에도 언제든 이러한 소통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얘기하느냐에 따라서 뉘앙스가 확 달라진다. 특히 남성은 메시지의 관계적 측면에 대해 여성에 비해 상당히 둔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시지에만 집중하다 보면 관계에 대해 소홀하게 되고, 인간관계의 갈등을 야기시킨다. 내가 하는 말의 내용이나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대방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존 고트만 교수는 결혼을 앞둔 연인 사이의 대화를 단 3분 동안 분석한 것만으로도 결혼 후 4년 안에 부부 관계가 깨어질 가능성 여부에 대해 94%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3,000쌍이 넘는 부부의 대화를 비디오로 촬영한 뒤 대화 내용, 말투, 표정 등에 나타난 감정을 20가지 정도의 세세한 범주로 구분하는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이혼 가능성을 예측하는 수학 공식을 만들어냈다.
이혼에 이르게 되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 표현은 경멸과 냉소다. 대화 중에 이런 징후들이 나타난다면 굳이 부부의 다른 면을 다 살펴보지 않아도 결혼 생활의 적신호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트만 교수는 "대화 중에 상대를 외면하면서 입을 삐죽이는 경멸은 가장 좋지않은 징후"라고 말한다.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나 부부들은 스스로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내가 애인으로부터 간혹 경멸이나 냉소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결혼은 피하는 것이 좋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도 배우자를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금물이다.
김주환 연세대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 영화 속 '불같은 사랑'을 찾으십니까
연인관계나 부부관계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랑이 있다. 우선'안정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친해지는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이들의 결혼에 대한 만족도는 가장 크다.
이러한 유형의 두 사람이 만나면 가장 이상적 부부가 된다. 그러나 '회피적 (avoidant)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친해지는 것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느낀다. 이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냉담한 연인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불안한 (anxious)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지나친 관심과 집착을 보이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첫눈에 반해 열정적 사랑에 빠진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안정적 사랑의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감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에 대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는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주로 조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불안한 사랑'이나 '회피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야 극적인 갈등이 생기고 이야깃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는 배우자로서는 빵점에 가까운, 불안한 사랑과 회피적인 사랑의 소유자를 굉장히 분위기 있고 멋있는 성격의 주인공으로 둔갑시켜 버린다.
이러한 대중매체에 자신도 모르게 세뇌된 젊은이들은 안정적 사랑의 소유자를 매력 없는 사람으로 평가절하 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심지어 안정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까지 회피적이거나 불안한 사랑의 소유자를 흉내 내려고 하는 경우가 생긴다.
사실 부부관계나 연인관계를 어렵게 하는 잘못된 고정관념 중에는 TV 연속극이나 영화 등으로부터 주입된 것들이 많다. 대중매체가 제시하는 사랑의 관계는 왜곡된 것이고 비현실적인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대중매체가 제시하는 사랑의 모형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라고까지 믿는 경향이 있다. 막장 드라마를 보며 그 드라마의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는 모두 말도 안되는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막상 그 주인공들이 즐기는 '사랑'만큼은 나도 언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한 영화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007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말도 안되는 픽션이라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의 사랑만큼은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성공적인 결혼에 이르기 위해서는 드라마 주인공 같은, 첫눈에 반할 수 있는 짝을 찾으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안정적 사랑을 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야 한다. 안정적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불꽃 같은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지만 친구처럼 배우자를 배려하고 사랑해줄 수 있다.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7대 지침
1. 커뮤니케이션의 관계적 차원에 더 신경 써라
-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배우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
2. 배우자의 말을 들을 때 표정을 흉내 내라
- 배우자가 웃거나 슬퍼할 때 그 표정을 따라 하면 배우자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다
3. 배우자의 강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
- 끊임없이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도와주는 부부는 결코 갈라서지 않는다
4. 감정이 격해지기 쉬운 문제를 논의할 때 더욱 주의해서 말하라
- 특히 돈, 섹스, 배우자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상대방을 더욱 배려하라
5. 배우자에 대해 불평할 때 사람 자체 보다는 구체적 일에 대한 불만을 말하라
- 배우자의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사람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6. 사랑을 받기 보다는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 사랑을 줄 때 더 행복해지므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7. 배우자를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금물이다
- 경멸은 결혼 생활을 위태롭게 하는 가장 위험한 감정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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