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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황천의 개' 인도 여행 길에 만난 인간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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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황천의 개' 인도 여행 길에 만난 인간의 삶과 죽음

입력
2009.02.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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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 지음ㆍ김욱 옮김

청어람미디어ㆍ336쪽ㆍ1만2,500원

“죽음 또한 이 여행을 통해 신뢰하게 된 것 중 하나였다… 내가 만난 죽음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확실하게, 이 세계의 덧없음과 무기적인 물질성을 이야기해줬다.”

가벼운 보사노바 리듬이 어울리는 사진에 달콤한 감상을 버무린 여행 에세이에 익숙하다면 ‘뭐 이런 게 다 있어’ 싶을 수도 있다. <황천의 개> 는 여행 에세이되 여행을 ‘소비’하고 싶게끔 부추기는 책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길 떠나는 것을, 숨을 쉬며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두렵게 만든다. 철학적 사색이 빚어낸 어둑한 목소리로, 책은 두껍지 않음에도 묵직하다. 저자는 사진작가이자 <동양기행> 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에세이스트 후지와라 신야(藤原新也)다.

후지와라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응시하기”를 원했고 “살아 있다는 존재감, 뜨거운 생명력”의 공간으로 인도를 택했다. 그는 갠지스의 화장터에서 불탄 시체를 뜯어 먹는 들개와의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개들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다가왔어. 시체를 무시하고 내게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자 소름이 돋더군. 녀석들은 인간이 어떤 맛인지 알고 있었던 거야. 불과 며칠 전 인간이 벌레와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는데, 개들의 사료로까지 전락한 거지.” 삶과 죽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공간에서, 후지와라가 얻은 진리는 “인간은 개에게 먹힐 만큼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이 순례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재를 손가락으로 집었어. 혓바닥 위에 올려 놓았지. 낯익으면서도 생소한 느낌이었어. 냄새도 맛도 없었어. 시체의 재를 혀에 올려놓았을 때 나라는 존재가 희미하게 떠올랐어. 무(無)를 증명하는 존재가 내 몸의 일부에 닿았을 때, 유(有)라는 내 존재가 환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아름답고 이국적인 것에 대한 흥분이 탈색된 자리에서, 여행자의 사색은 차가운 새벽 바람의 질감을 띤다.

깊이 있는 사진들로 ‘카메라로 쓴 시집’이라는 평을 들었던 전작들과 달리 <황천의 개> 에는 사진이 몇 장 없다. 거친 입자로 이뤄진 글들은 오히려 ‘언어로 표현한 한 장의 사진’이라는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이 세기의 역마직성(驛馬直星)은 자신의 방랑을 이렇게 말한다. “여행을 선택한 이유 같은 건 없다. 만약 젊은 날의 충동적인 행위를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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