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구한테 6학년을 맡기나."
서울 모 초등학교 A교감은 최근까지 올해 담임 배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지난달부터 신청서를 받았지만, 10학급에 이르는 6학년 담임을 지원한 교사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능한 분이 맡아주셔야 한다"는 독려도, "다른 행정업무를 줄여주겠다"는 당근도 통하지 않자, 분란을 최소화 하기 위해 내세운 해법은 나이와 '텃세' 순이었다. 결국 2년차 신참 교사 2명과 새로 전근해 온 8명에게 6학년 담임을 맡겼다.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담임 배정이 한창인 초등학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과거 "6학년 담임은 유능한 교사"라는 인식 덕에 선호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교사들의 6학년 담임 기피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이 '말발 약한' 1,2차 새내기나 새로 전입한 교사들 몫으로 사실상 굳어졌다.
서울 N초교 송모(32) 교사는 "몇 해 전 초임 시절에 6학년 배정을 받은 고참 교사가 개학식 날에 자기는 도저히 못 맡겠다며 나한테 억지로 떠 넘긴 적도 있었다"며 "나이나 전입 순이 그나마 잡음이 적어 이젠 '불문율'처럼 됐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교육청이 2007년 서울시내 초등학교의 6학년 담임 현황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은 신규 교사거나 전입 1,2년차 교사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일수록 경험 많고 노련한 교사가 요구되지만, 담임 배정은 거꾸로 가는 것이다.
교사들이 6학년 담임을 꺼리는 배경에는, 교사만큼 훌쩍 커버려 더 이상 말이 먹혀 들지 않는 '6학년들의 질풍노도화'가 자리잡고 있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 6학년의 평균 키는 남 150.3㎝, 여 151.1㎝. 1985년(남 141.4㎝, 여 143.1㎝)과 비교하면 9㎝가량 커져 당시의 중학생 1학년(남 147.3㎝, 여 149.7㎝) 덩치를 능가한다. 학생들의 발육이 빨라진 만큼이나 교사들이 감당하기 힘든 사춘기적 반항과 일탈도 빨리 찾아온 것이다.
경기 모 초교의 강모(33ㆍ여) 교사에게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지난 한 해는 그야말로 '끔찍한 1년'이었다. 170㎝나 되는 아이를 비롯해 절반 이상이 자신보다 키가 큰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벅찼지만, 일탈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공예 수업을 하던 미술시간에 학생끼리 시비가 붙자 한 학생이 커터 칼을 휘둘러 이를 말리던 아이가 다치는가 하면, "아버지가 때린다"는 이유로 가출한 아이를 찾으러 다니느라 경찰과 함께 며칠 발품을 팔아야 했다.
강 교사는 "낙후한 지역일수록 6학년 아이들이 더 거칠고 반항적이다"면서 "올해는 '6학년 짐'을 벗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음악실을 부수는 등 5학년 학생 몇몇이 유난히 드세 교사들이 올해 6학년 담임을 절대 못 맡는다며 벌벌 떨었다는 얘기도 떠돈다.
대다수가 여성인 초등 교사들로서는 이처럼 '머리가 굵어진' 학생들을 다룰 방법을 찾지 못해 더욱 곤욕을 치르기 일쑤다. 서울 H초교 정모 교사는 "한 여자애가 담배를 피다 걸려서 혼을 냈더니, 아예 등을 돌리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당혹스러웠다"며 "6학년이 되면 말로는 통제가 안 되는데, 체벌을 통한 훈육도 할 수 없어 고충이 많다"고 말했다.
경기 모 초교 박모(32) 교사는 "6학년생들이 선행학습으로 중학교 공부를 해 초등교육을 시시하게 여긴다"며 "더군다나 사춘기 청소년들이 학교 선배들을 통해 교육 받기도 하는데, 6학년생들은 학교 내에 선배가 없다 보니 더욱 기고만장해지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초등학교는 중ㆍ고등학교와 달리 학생들의 사춘기적 고민과 방황을 담당할 전문적인 상담교사 제도마저 전무하다. 일부 학교가 학부모를 위촉해 상담 활동을 맡기긴 하지만, 대부분은 담임 교사가 학생들의 생활 고민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 B초교 정모(34) 교사는 " '초등학생은 아직 어린애'라는 편견 탓에 전문적인 상담 교사나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교육당국의 관심도 아예 없다"며 "담임 교사도 여러 학생들에게 치이다 보니까 문제아를 외면하고 방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