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된 여자가 결혼 35년 만에 처음으로 300만원짜리 적금 타게 돼서 설레는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있답니다. 저 바보스럽죠?
남편은 사진관을 하고 있어서 여유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빈털터리였습니다. 사진관도 빚으로 시작한 것이더라구요. 저와 남편은 매일 200원씩 찍는 일수부터 시작해서 10만원짜리 계도 들면서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알뜰히 살림해서 몇 년이 지나서는 쌀 한 가마를, 그 다음엔 다섯 가마 쌀빚 놓는 식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9년 만에 허술한 집을 샀습니다. 그 집에서는 한번도 살아보지도 못한 채 사진관에 딸린 단칸방에서 살았지요.
몇 년 뒤 그 집을 팔아 작은 터를 사 집을 짓고 또 팔기를 여러 번 해서 지금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역시 지은 집에서는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답니다. 대출금으로 지은 집이라 전세를 놓아야 했지요. 지금 이 집도 15년 동안 했던 사진관을 그만두고 슈퍼를 시작했다가 건물주인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사 오게 된 집입니다. 궁리하다 1층을 전세주고 3층 옥상에 조립식으로 방을 8개 꾸려 하숙을 시작했답니다. 그 역시 빚을 얻어서 시작했습니다.
세 아이 가르치랴 빚 갚으랴 우린 항상 빚 속에 살았습니다. 대학입학금, 등록금도 미리 장만해 둔 적이 없습니다. 대출을 받거나 꾸어서 갚는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항상 갚아야 하는 인생을 살다 보니 어딜 가든 좀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매달 들어오는 하숙비는 남편이 다 관리합니다. 사람들은 절보고 “아니, 지가 하숙하면서 돈 한푼도 못 모았느냐?”며 바보라고 하지만 갚아야 할 돈이 있는데 내가 돈을 움켜쥐고 있은 들 뭐하겠습니까? 같이 힘을 모아서 빚을 갚아가야지. 남편에게 “빚만 다 갚으면 하숙비는 다 압수여”했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작년 8월쯤에 남편이 말하데요.“이번에 300만원 정도 갚으면 내 생전에 진 빚은 다 갚게 되나?””그래요. 장~하슈. 환갑 넘어 60대 중반이 돼서야 빚을 다~ 갚고…” 비아냥댔지만 그래도 빚을 다 갚게 된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웠습니다.
적금은 작년 초부터 서울서 직장 다니는 막내가 용돈으로 15만원을, 큰아들이 5만원을 주길래 생각 끝에 처음으로 신협에 찾아가 들게 된 겁니다. 월 25만원씩 들어가는 돈 중에 5만원은 제가 보태기로 하고요. 그게 벌써 1년이 돼서 3,078,750원이라는 거금을 타게 됐답니다.
그런데 아직 아이들에게 목돈 들어갈 일도 많고… 생각해 보니 그깟 300만원 생긴다고 기뻐할 일도 못되네요.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이들 결혼까지 쓸 돈을 모아야 하는 건지…. 삶이 무겁네요. 짐을 벗는가 싶으면 다시 지어야 할 짐이 생기니 아마도 생을 마감해야 모두 벗을 수 있을까요?
적금 탄다고 기뻐서 쓰기 시작한 글이 무겁게 마감하게 됐네요. 어쨌든 300만원은 제가 처음으로 적금 부어 모은 돈이니 내 맘대로 쓸 수 있는데…,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충남 연기군 - 이재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