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1년에 대한 각양각색 평가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소통의 문제이다.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 대통령 스스로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시인한 적이 있고, 정부·여당 역시 소통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는 야권이나 시민사회 못지않다.
'내 탓이요'없는 소통 부재
소통이란 '생각하는 바가 막힘 없이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가치중립적이어서 누구나 쓰기 좋은 기술적 용어이다. 사람들은 어떤 소통인지 상관없이 '소통이 부족했다, 소통에 더 힘쓰자'며 봉인을 찍는다. 그러나 정작 어떤 소통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통이 없다.
이명박 정부를 위해 일하는 누구도 소통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소통의 부재란 정부의 진의를 국민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이고 정부와 국민을 이간질하는 요인들을 해소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렇기에 인터넷을 통한 허위정보의 유통·확산을 단속하거나 처벌하려고 시도하고, 정부 스스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을 구축하겠다고 나서고, 청와대 비서기능을 강화하거나 정책홍보를 위한 방송프로그램을 지원하려고 시도하는 것일 게다.
사실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표현은 달랐지만 노무현 정부 때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정책홍보기능을 강화하고 정부와 국민 간 소통을 왜곡시킨다며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주류언론에 선전포고를 하거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자실을 폐쇄하고 명예훼손소송 등을 제기하는 등 임기 내내 법석을 떨었다. 이번에는 인터넷과 시민사회단체, 범여권 등 골수 비토 그룹이 소통 왜곡의 주범으로 지목된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정부는 왜 항상 소통 왜곡의 요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정부야말로 소통 부재의 원인제공자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일방통행ㆍ밀어붙이기 정책추진과 속도전 등 오만과 편견과 과욕이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정부나 여권 쪽에는 경제살리기에 매진해야 할 때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는 비토 그룹들에게 소통 왜곡의 책임을 돌리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사회 곳곳에 거점을 두고 소통의 마디마디를 단절시키는 세력을 몰아내는 문화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
이렇듯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란 말은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위한 표어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쪽을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생각과 이해관계를 지배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경합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하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소통은 지극히 어려운 과제이다. 정부 정책의 중요부분까지 양보해야 하는 고통스런 선택을 강요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소통이다.
추기경의 교훈 되새기길
'시즌 2'를 맞는 이명박 정부는 소통 부재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뽑아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준 유권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의아해 한다. 정부는 그들과 잘 소통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불만과 반발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제대로 소통하고자 애썼던 것일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마치 기적과도 같이 대한민국의 생명력과 존재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란 어떤 것인지를 처절하게 보여 주었다. 그런 소통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정부가 소통의 문제를 더욱 뼈저리게 여기고 단기적 목표에 사로잡힘 없이 꾸준히 참을성 있게 고민하고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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