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고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냈지만 각계 인사들의 추모의 마음은 더해가고 있다. 이들은 추기경과의 개인적인 추억을 회고하면서 한결같이 고인이 남긴 생명 외경과 화합의 정신을 기렸다.
월주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해방 후 종교 지도자로서는 가장 큰 일을 하신 분이다. 암울한 시절 민주화운동을 위해 역할을 하고, 권위주의 정치를 비판해 바로잡았으며,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감싸안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셨다. 또 갈등이 있을 때마다 양보하고 타협하고 공생해야 함을 일깨워주셨다.
종교인들은 그 분의 뜻을 본받아 불교계는 자비를, 유교인들은 인의를, 기독교인은 사랑을, 천도교인은 포덕을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박형규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 관심을 뒀던 분이다.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곁에 항상 머물고자 한 삶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낮은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덕(성균관장)
참다운 종교인이면서 종교 간의 벽을 허물었던 분이다. 다른 종교에 대해 늘 넉넉하게 마음을 열었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이 별다른 종교분쟁 없이 지내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분의 덕이 크다.
종교간 화합을 위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를 창립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 자신의 종교보다 이웃 종교를 더 배려했던 마음은 종교인은 물론 모든 국민이 배워야 할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이어령(이화여대 석좌교수)
당신이 바보라고 얘기하셨듯 참 수수하게 사신 분이었다. 현실적인 계산을 초월하면서도 사회적인 소소한 문제에까지 관심을 두셨다. 그게 그 분의 힘이 아니었을까. 종교 지도자 가운데 지식으로 그 분보다 눈에 띄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분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인가.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큰 덕이 있는 분이었고, 덕 앞에서 지식 같은 것들은 별빛처럼 사라져 버린다. 각막 기증은 사람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보여줬으며,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하려 했던 것은 인간답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삶의 문제임을 생각하도록 해줬다.
김남조(시인)
명동성당으로 조문을 가 추위에 몇 시간씩 떨면서 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민중의 아름다움을 봤다. 사람들 마음 속에 더 많은 공감과 더 좋은 유대가 이뤄지게 한 것도 그 분의 유산 중 하나일 것이다. 고인의 큰 뜻이 후세까지 전달돼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데 언제나 조언을 제시하는 귀한 유덕(遺德)이 됐으면 한다.
최종태(조각가)
살아계실 때는 좋은 선배, 훌륭한 추기경이셨고, 돌아가시고 보니 테레사 수녀 같은 성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시기 전 주변 수녀들이 더 하고 싶은 일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다했다'고 대답한 것으로 들었다.
남김 없이 살았다는 의미다. 사회를 맑게 하는데 삶을 통해 기여했듯이 죽음을 통해서도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작게는 이번 장례식이 조화 같은 부조리한 관행을 없애는 데 큰 계기가 될 것 같다.
조영남(가수)
김수환 추기경의 80회 생일 모임에서 축가를 불렀는데 바쁜 사람 불렀다고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인간이 얼마나 겸허할 수 있는지 그때 알았다. 두 번째 가까이서 뵌 것은 몇 년 전 시각장애인축구대회 때였는데 나중에 인사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목례를 했는데 추기경께서는 45도로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 계셨다. 우리 시대 한국에는 간디나 테레사 수녀 같은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가 없는 줄 알았다. 추기경께서는 간디의 비저항보다 더 위대한, '마음의 저항'이라는 무기로 불의에 맞서신 분이다. 명동성당의 조문객 인파가 추기경이 일으킨 마음의 혁명을 입증하고 있다.
정명훈(지휘자)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준 큰 별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슬픈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김수환 추기경은 어려울 때마다 국민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종교를 뛰어넘는 그 동안의 가르침은 소중한 밀알이 돼 큰 열매를 맺을 것이다.
자연스러움이 정직하게 배어나오는 추기경의 순수한 삶은 평소 내게도 많은 감동과 예술적 영감을 주셨다. 도쿄필 공연으로 일본에 머물고 있어 조문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 마음으로나마 깊은 애도를 표하며 영원한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원한다.
안성기(영화배우)
살아계실 때도 사회의 중심이 되는 아주 큰 분이라 생각했지만 돌아가신 뒤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 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앞선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사제로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살다 가셨다.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실 때나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시며 많은 것을 남겨주셨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말씀이 더욱 가슴을 울린다.
정리=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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