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세요,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옷깃을 여미는 영하의 추위에 불어 닥친 거센 황사 바람도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시민들의 애틋함을 막아 서진 못했다. 장례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 대성전에 못 들어가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마음으로 애도하면 됐다. 돗자리가 없는 할머니는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명복을 빌었다. 성당 내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은 주변 건물 옥상이나 계단에서 영면의 길로 떠나는 추기경을 지켜봤다. 시민들은 눈을 기증하고 떠난 추기경이 개안(開眼) 시켜준 '마음의 눈'으로 그의 마지막을 가슴에 담았다.
김 추기경의 5일장 마지막 날인 20일. 장례미사가 열린 서울 명동성당은 미사 1시간 전부터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전날 자정까지 조문객 수가 가톨릭 국가에서도 드물다는 40만명에 달했지만, 이로도 아쉬움을 달래지 못한 1만 여 시민들은 가족과 연인, 친구의 손을 잡고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오전 10시부터 1시간 40분 가량 진행된 장례미사 내내 시민들은 가톨릭회관 앞, 대성전 앞, 대성전 뒤 주차장, 성당 언덕길 등에 서서 여섯 곳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10시 미사가 시작되자 모두 머리를 숙였다. 수원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전 6시에 왔다는 박비호(42)씨는 "선종 당일인 16일부터 5일째 명동성당에 '출근' 했다. 묵주 하나만 갖고 돌아가신 추기경님처럼 나도 욕심 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오전 11시께 고별성사가 시작되자 성당 마당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시민들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쪼그리고 앉아 어깨를 들썩였다. "내 나이 팔십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추기경의 음성 등이 담긴 영상이 11시30분께 상영되고 정진석 추기경이 시신 주위를 돌며 성수를 뿌리자 명동 성당 주위는 울음바다가 됐다.
11시 40분께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삼나무관이 대성전 주출입구를 나와 성당 앞 마당으로 옮겨지자 애써 눈물을 참았던 사람들도 슬픔이 북받쳐 흐느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추기경의 영정을 따라 신부들이 운구하는 관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시민들은 까치발로 선 채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명동성당에는 처음 왔다는 박춘자(58ㆍ여)씨는 "사실 외손자의 유치원 종업식인데 마음이 여기에 있어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며 "추기경님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시는 길을 밝히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카메라에 운구 장면을 담기도 했다.
추기경이 모셔진 관은 곧 보통 신부들처럼 상조회사에서 빌렸다는 검은색 리무진에 실렸다. 운구차 근처 추모객들은 추기경의 사랑을 느끼려는 듯 차량에 손을 살며시 대기도 했다. 일부 여성 신자들은 머리에 썼던 미사포를 흔들며 애도했다. 봉원심(55ㆍ여)씨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듯하다.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더 좋아하는 추기경이셨다"고 애도했다.
12시께 조종(弔鐘)이 울리는 가운데 운구차는 명동 성당을 서서히 빠져나가며 추기경을 영면의 길로 조금씩 인도했다. 그 뒤로 "그 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라는 수많은 시민의 기도 소리가 성당에 큰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김수정(52ㆍ여)씨는 "아직도 추기경님이 돌아가신 게 믿어지지 않는다. 생전에 얼굴을 못 뵈었지만 이렇게라도 뵐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며 울먹였다. 눈물로 추기경과 작별인사를 하던 한 중년 여성은 운구행렬이 눈에서 사라지자 서 있기조차 힘겨운 듯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
운구차가 명동 초입을 지나 삼일로에 접어들자 인도에 늘어서 있던 시민들도 눈물을 닦고 고개를 숙이며 "잘 가세요. 편안히 쉬세요"라고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못내 아쉬웠는지 대성전으로 들어가 추기경의 관이 놓여 있던 곳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보통 사람처럼 소박했던 김 추기경은 그렇게 보통 사람들에게 사랑과 배려라는 큰 가르침을 남기고 30년간 정들었던 명동성당을 떠나갔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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