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지 20일로 꼭 한 달이 된다. 지난달 20일 ‘희망’ ‘희생’ ‘실용’을 강조한 그의 취임사는 그러나 아직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불과 한 달을 놓고 오바마 정부의 출발을 규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그가 취임사에서 언급한 ‘심각한 도전’이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한 한 달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바마 정부의 도전은 의회에서 시작됐다. 공화당 인사들을 내각에 포진시키는 링컨식 ‘통합의 정치’를 표방했으나, 경제위기 해법을 놓고 양당이 깊은 인식의 골을 드러내며 초당적인 국정 운영은 일단 좌초됐다. 경기부양법 표결 과정에서 공화당 하원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 단적인 예다.
공화당 의원들을 백악관에 초청하고 슈퍼볼 경기를 함께 관람하는 등 물리적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애쓴 노력을 생각하면 참담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 의회 정치를 포기하고, 선거 유세하듯 지방을 돌며 국민을 상대로 직접 ‘길거리 정치’에 나선 것을 두고 공화당은 ‘의회에 대한 모욕이자 선전포고’라고 비아냥거렸다.
의회의 협력을 끌어내지 못해 결국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난 지미 카터나 임기 내내 의회와의 싸움으로 행정력을 낭비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적과 야당을 포용하는 ‘팀 오브 라이벌스’로 내각을 꾸린 포용의 인사는 각료 지명자들의 잇단 비리 혐의로 난맥상을 드러내며 명분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민주당 경선에 나섰던 빌 리처드슨 상무장관 지명자가 특정업체와의 유착혐의로 상원 인준을 시작하기도 전에 중도하차 한 것을 시작으로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 낸시 킬퍼 ‘백악관 최고 성과관리 책임자’가 탈세 혐의로 잇따라 사퇴했다.
리처드슨에 이어 상무장관에 지명된 저드 그레그 상원의원은 세번째 공화당 각료로 주목 받았으나 오바마 정부와의 갈등만을 부각시킨 채 지명된 지 일주일도 안돼 자리를 반납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가장 큰 시련은 역시 경제였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세부계획이 확정되고, 경기부양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경제 위기의 고삐를 틀어쥐는 듯 했으나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았다. 경기부양책이 3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무색하게 실업자 수가 480만명을 넘어 실업 통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가채무는 10조8,0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0%선에 육박했다. 이런 추세라면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언론들은 미국 경제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기 전 이미 ‘DOA(Dead on Arrivalㆍ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 상태였을 지 모른다는 암울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외교와 인권에서는 빛을 발했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고문 금지, 임금차별 금지 등 조지 W 부시 전 정부의 어두운 유산을 과감하게 척결해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을 알렸다. 부시 정부가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란, 북한과 직접적인 대화 의지를 밝혔다. 이슬람권에 대해서는 ‘균형있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약속했다.
아직은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는 상황이지만 세계는 오바마 정부의 ‘타협과 협력’의 외교가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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