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라 하지만 커피 시장만은 예외인 것 같다. 밥값을 줄인다면서도 커피값 지출은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자판기커피, 다방커피로 대표되는, 한 잔 대충 때우는 커피의 시대가 저물면서 이젠 커피 깊은 맛을 탐닉하는 시대가 된 것.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도 당연시되고 있다.
한국의 커피 문화도 미국식에서 이젠 유럽의 정통 커피로 관심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 스위스의 고급 커피 로스팅 브랜드인 '헤미 앤 바우어(Hemmy & Baur)'의 CEO인 르네 슐레퍼씨가 한국에 왔다. 그를 만나 유럽, 특히 스위스의 커피 문화와 좋은 커피 맛에 대해 물었다.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커피의 나라다. 정통 유럽의 커피 문화를 고수하고 있어 스타벅스도 고전하고 있는 곳이다. 슐레퍼 씨는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질 좋은 커피를 만들고 마시는 곳"이라고 자부했다. 스위스 가정의 70%가 집에 원두로 직접 커피를 뽑는 기계를 갖추고 있을 정도로 커피는 생활의 한 부분이다.
하루 8~10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그는 "커피의 품질은 커피 위에 살짝 뜨는 황금색 거품인 '크레마'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설탕을 넣어도 바로 가라앉지 않을 정도의 막을 지닌 크레마가 적당히 생겨야 좋은 커피라는 것. 최고의 커피 종자로 최적의 로스팅과 분쇄를 해야 만족스런 크레마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H&B'는 스위스에서도 백화점이나 일류 레스토랑에서만 판매되는 고급 로스팅 브랜드다. 다른 로스팅 업체들이 350도 고온에서 4,5분 내에 대량으로 볶아내는 것과 달리 H&B는 최고 220도의 온도에서 12~15분간 충분히 로스팅하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 회사 창립 이후 80년간 그 로스팅 방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커피콩에는 800가지의 아로마가 담겨 있는데 고온으로 빠른 시간 로스팅하면 그 아로마가 충분히 살지 못한 채 타버린다"고 했다. 천천히 볶아야 본연의 아로마가 그대로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식 커피 문화는 스위스 등 유럽에 비해 뒤쳐진다"며 단적인 예로 필터를 이용한 커피 머신을 들었다.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크레마가 생기지도 않고 오랜 시간 유리포트에 끓여 맛이 점점 엷어지는 커피를 즐긴다는 것. 슐레퍼씨는 "한국의 커피 애호가들도 미국식 습관에서 탈피해 스위스 등 정통 유럽식의 커피 문화로 전환할 것"을 충고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가장 큰 커피 로스팅 브랜드 'H&B'는 국내에선 유일하게 '투썸플레이스'에만 커피를 공급하고 있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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