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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성적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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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성적 자기결정권

입력
2009.02.2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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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50대 트랜스젠더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S씨에 부산지법이 강간죄를 적용했다. 피해자는 호적상 남자지만 24세 때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 무용수로 활동해 왔고, 사정을 아는 남성과 장기간 동거하는 등 여성으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이고, 따라서 그에 대한 성적 침탈행위는 여성으로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게 판결 요지다. 2006년 대법원이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신청을 받아들여 성 전환이 민법상 인정된 데 이어 형법상으로도 인정될지, 상급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이 '부녀'에 트랜스젠더도 포함되느냐가 관건이고, 1996년 판례가 최대 걸림돌이다. 당시 대법원은 "성 염색체가 남성이고, 여성과 내외부 성기 구조가 다르며, 여성으로서의 생식 능력이 없는 점 등에서 트랜스젠더인 피해자를 사회통념상의 여성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견해 변경 가능성은 엿보인다. 성 염색체, 성기 구조, 생식능력 등 자연적 요소를 성별 판단의 근거로 삼으면서도 최종적으로 '사회통념'에 기댄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인정한 2006년 판례는 자연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신적 요소도 고려했다. 대표적 트랜스젠더인 하리수 씨의 성별 정정과 결혼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눈길도 많이 바뀌었고, 법이 사회의 변화에 뒤처질 수는 있어도 언제까지 따로 갈 수는 없다. 명백한 강간의 고의로 범행을 저질렀는데도 피해자가 트랜스젠더라는 우연한 사정의 차이를 이유로 강간죄에 비해 형벌이 한참 가벼운 강제추행죄가 적용되는 불균형도 바로잡아 마땅하다. 강간죄를 두어 보호하려는 법익이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천부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에서 비롯한 '성적 자기결정권'은 우선 성행위 여부 및 상대방에 대한 결정의 자유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런 권리를 침탈 당할 경우의 가장 큰 결과적 피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과 같이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상처다. 두려움과 함께 가장 많이 보고되는 것이 자존과 명예의 상실감이다. '부부강간'은 물론이고, '부녀' 요건에 걸려 강간죄 검토조차 되지 않는 남성에 대한 성폭행도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도 다르지 않다. 이 기회에 아예 '부녀'를 독일처럼 '타인'으로 바꾸는 방안까지도 논의했으면 싶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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