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배정 받고 어머니와 영등포 교복사에 갔던 게 이맘때지 싶다. 교복사 사장님은 척 한 번 몸을 훑어보고는 교복을 내주었다.
어머니는 교복 걸친 내 몸을 샅샅이 살피고는 고개를 저었다. "더 큰 걸루 주세요." 사장님도 만만치 않았다. "아, 그거면 돼요. 장사 하루이틀 하나." 어머니는 나를 바로 세우고는 바닥에 널린 교복 포장 비닐을 주워 들었다.
얼떨떨해 서 있는데 똘똘 뭉쳐진 비닐 두 개가 내 가슴께에 쏙 들어왔다. "봐요, 봐요. 적죠?" 아직은 판판하지만 곧 불룩하게 나올 가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사장님도 허허 웃으며 한 치수 위의 교복 상의로 바꾸어 주었다.
대명천지에 그것도 남자 앞에서 그런 일을 서슴지 않은 어머니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 아무튼 중3 졸업식 때까지 교복은 넉넉했다.
어머니는 두고두고 자신의 안목에 대해 자랑했지만 사실은 중학교 입학 때와 비교해 별로 성장하지 않은 빈약한 내 몸 때문이었다. 교복을 입고 친지도 방문하고 정독도서관에도 갔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교복에 울상 짓는 아이들이 있고 교복값 담합이라는 말이 나온다. 닳고 닳아 번들거렸던 교복, 그래도 교복이 좋았다. 교복 자율화가 되어 늘 같은 사복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고등학교 때에 비하면.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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