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지도 않는 학습지를 돈 아깝게 왜 시켜, 당장 끊어!”(아버지), “놔두면 하겠죠. 다른 집 애들도 다 하는 걸, 몇 푼 한다고 남자가 째째하게 그래요.”(어머니)
자녀교육 문제는 부부싸움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매주 밀려 수북이 쌓이는 아이들 학습지를 보는 관점도 부부가 사뭇 다를 수 있다. 낭비라 여기는 가장과 남들에게 절대 뒤지기 싫은 모성이 주로 엉킨다.
다툼이 극으로 치달을 즈음 목소리 하나가 부부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다. “아버님, 어릴 적 공부습관은 참 중요해요. 학습지 양을 조절해 하루에 한 장만이라도 풀게 하면 어떨까요.” 조곤조곤 이어지는 설명에 부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느닷없이 나타난 해결사는 바로 학습지 교사.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학습지 교사가 부부싸움에 말려든 까닭이 궁금했다. 구몬학습지의 임동옥(42) 박진영(36) 교사를 만났다.
“애들만 가르치면 된다고요, 아니죠~”
임 교사는 “아이들 교육 문제는 부모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보니 부부간 의견 차도 클 수밖에 없다”며 “‘부모 맘 부모가 안다’고 객관적인 근거와 대안을 제시하면 싸우던 부부도 금새 화해한다”고 말했다.
수시로 왔다갔다하니 자연스레 집안 사정을 알게 되고, 아이를 직접 가르치니 내 자식 문제처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까지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툼만 있는 건 아니다. 부모의 자녀사랑이 애절할 때도 많단다. “영어를 잘 모르는 아이의 아빠가 교육을 위해 일일이 학습지마다 한글 발음을 표기하는 걸 보면 눈물이 날 정도다”(임)고 했다. 1년에 한번 있을까말까 한 학교의 가정방문과 달리 학습지 교사는 늘 부모와 호흡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학습지 교사는) 아이뿐 아니라 부모까지 접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첫 마음은 ‘보람 찾기’ 였다. 박 교사는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업무방식(상명하달)이 싫어 금융회사를 때려치우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인 만큼 보람찬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라는 심정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웬걸 바로 아이들 때문에 눈물이 쏙 빠졌다. 둘은 ‘개구쟁이들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은 집에 있어도 바쁜 척, 없는 척, 자는 척했다.
“문 열어줄 때까지 초인종을 계속 누르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5분간 장장 10번이나 전화를 할 때도 많다.”(임) “아예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딱 붙어 꼼짝 안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박). 협박도 어르기도 통하지 않았다.
해답은 ‘사랑’뿐이었다. “추상적으로 들리고 살짝 민망하긴 하지만 사랑이 힘”이라고 강조했다. 일부러 학습지를 찢어버리거나, 잃어버렸다고 둘러대는 아이들을 보면 어느 누군들 한대 콕 쥐어박고 싶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초심을 떠올렸다. “예쁘다, 잘한다 해주면 싫어할 아이 한 명 없고,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쉽게 마음을 여는 게 또 아이들이니까요.”
사랑만큼 습관의 위력도 놀랍다.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면 아이들의 태도가 차근차근 변하는 걸 느낄 수 있단다. 임 교사는 “한 번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실력은 금세 올라요. 그 과정을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단기간에 효력을 내는 과외와 학원은 보약, 뜸들이듯 학습태도를 몸에 배게 하는 학습지는 밥’이라는 비유를 곧잘 하곤 한다.
“오히려 배우고 돌아와요”
그들은 교사가 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과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직업이라고 여긴다. 임 교사는 “학부모를 통해 제 모습을 돌아보기도 하고, 다른 아이의 삶 속에서 어른인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고 했다. 가르치는 업을 부모와 아이 위에 군림하는 권세쯤으로 여긴다면 가질 수 없는 마음가짐이다.
사실 그들을 대하는 세상의 눈은 아직 편협하기만 하다. 정식 교사가 아닌 탓에 실력을 의심 받고, 국민연금 산재보험 휴가 등을 보장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다. 어디 그뿐이랴. 퇴근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고, 아이들 일정에 맞추느라 저녁 챙겨 먹는 날도 손에 꼽는다. 두 교사가 일주일에 가가호호 방문하는 회원 수가 100여명, 학습지 분량으로 따지면 3,300여장에 달한다.
그래도 그들은 당당했다. 박 교사는 “직업환경은 개선될 부분이 많지만 발로 뛰는 만큼 보장을 받는 건 장점”이라고 했다. 남들은 몰라줘도 교사라는 직업적 보람이 연봉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얘기도 했다.
자부심은 열정을 키우는 법이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에 아파도 꾹 참고 나가고, 수업(보통 15~20분) 뒤엔 학부모와 대화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과의 일정, 그리고 일에 대한 소신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그들의 다이어리가 열정의 생생한 전리품이다.
“교사는 다이아몬드 광맥을 캐는 사람 같아요. 무궁무진한 아이들의 잠재력을 파고들어 발견하고 빛날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보석을 앞에 두고 게을러질 수 있겠어요.”(박) 함박웃음을 짓는 그들의 발걸음은 어느새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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