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13일 내놓은 대입 자율화 논란 해소 후속 조치는 예상대로 '정부의 대입 전형 개입'을 본격화 한 성격이 짙다. 대입 자율화 체제가 겨우 2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4년제 대학 총장 협의기구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전형안 마련 등 주요 업무를 그대로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협력위원회'다. 교육협력위는 교과부 관계자, 대학 총장, 시도교육감, 교수 및 현장 교사 등 교육전문가들이 참여해 각 대학에 사회적 책무성이 강조된 대입 전형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기구다.
겉으로 보기엔 다양한 외부 의견들을 수렴해 대입 전형안을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부 입김이 많이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 A고 진학부장 이모(45) 교사는 "결국 대입 자율화 도입 취지에 맞춰 특정 대학들이 마음대로 전형안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주된 역할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교육협력위 구성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대교협법 개정안에 포함돼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시행할 수 있지만 교과부는 대입 자율화 논란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르면 이달 안에 자체적으로 협력위를 만들어 운영에 들어갈 방침이다.
관심사는 교육협력위에서 논의된 내용의 파괴력이다. 대교협은 협력위 논의 사항을 바탕으로 상반기 중 전국 주요 대학 총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칭' 선진형 대입 전형 확대 공동선언'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경우 교육협력위 논의 안은 사실상 '대입 자율화 체제 전형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입 3불(본고사ㆍ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 금지) 폐지를 비롯한 대입 완전 자율화는 2012년 이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신중히 추진하겠다"는 '조건부 대입 완전 자율화' 천명 부분도 예사롭지 않다.
교과부 내부와 교육계에서는 "대학들이 점수 위주의 후진적 선발 전형을 고집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계속된다면 대입 자율화는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안병만 장관의 교총 발언 이후 속전속결식으로 대입 자율화 논란 진화에 나선 교과부의 이런 조치들이 가져올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외국어고생 우대' 논란을 빚고 있는 고려대 2009학년도 수시2학기 모집 일반전형 결과에 대한 대교협 측의 심의에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 대교협 심의가 '고려대 봐주기'로 끝날 경우 교육협력위가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대교협 측의 전형안 심의 행위 자체가 신뢰성 시비에 휘말리게 돼 심의권 이관 등이 부각될 수 있다. 2012학년도부터 예전의 본고사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대학별고사 만으로 일정 비율의 학생들을 뽑겠다는 입장인 연세대 입시안도 제동이 불가피하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과부의 이런 조치와 맞물려 대입 자율화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 정부가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과 학생 선발 자율권을 동시에 부여하는 '대입 자율화 3단계 방안'을 발표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추진 과정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는 바람에 이번과 같은 전형안 논란이 불거진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신일 전 서울대 교수는 "대입 자율화는 책임을 동반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며 "대학들은 대입 전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점수 경쟁, 시험 경쟁에서 벗어나 학생의 학업성취와 잠재력, 소질, 환경 등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진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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