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임명된 280명의 공공기관장 중 전ㆍ현직 관료 출신이 3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민간 출신은 10%를 간신히 넘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전면 물갈이 한 것이 결과적으로 관료들의 자리만들기에만 톡톡히 기여한 셈이다. “가급적 민간 출신으로 선임하겠다” “능력과 전문성에 기초하겠다”던 당초 원칙은 역시 공염불에 그쳤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이런 공생 관계가 지속되는 한, ‘공공기관 선진화’는 구호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다.
15일 본지가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장 이력 분석’ 자료 및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을 토대로 현 정부 출범 후 1년 가량 동안 신규 선임되거나 유임된 공공기관장 280명을 출신 별로 분석한 결과 관료 출신이 총 98명(35%)으로 가장 많았다.
교수ㆍ연구원 등 학계 출신도 88명으로 30%가 넘었지만, 상당수가 연구소ㆍ진흥원 등의 연구기관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반면 기업인이나 금융인 등 순수 민간 출신은 35(12%)명에 불과했다.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관행이 가장 심한 곳은 지식경제부와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등 경제부처. 지경부는 특히 산하 공공기관(69곳)이 유독 많아 퇴직 관료들이 차지한 공공기관장 수는 21명에 달한다.
재정경제부나 금융위원회는 공공기관장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공공기관으로 분류되지 않는 금융협회장이나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 등까지 포함하면 20명에 육박했다. 국토해양부도 7명의 공공기관장을 배출했다.
여기에 기관장 아닌 임원ㆍ간부급으로 나간 퇴직 관료까지 합치면 낙하산수는 훨씬 늘어난다. 특히 경기침체가 본격화됨에 따라 ‘위기관리엔 그래도 공무원 출신이 적임’이란 인식까지 커지면서, ‘관료출신 우대’ 분위기는 더 확산될 전망이다.
물론 정부나 관료들의 항변도 일리는 있다. 단지 관료 출신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아서는 곤란하지 않느냐, 또 참여정부와 비교를 해봐도 관료 출신 공공기관장 비중이 큰 차이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작년 5월 90개 대형 공공기관을 ‘공모제 활성화 기관’으로 지정하면서, “실질적인 공모제를 통해 민간출신을 우선 선임하겠다”고 밝힌 터. 특히 “정부가 이를 실행하는 지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까지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공모제를 채택했던 수출입은행장 자리에 대해 이번엔 공모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정부 차관출신을 바로 임명한 바 있어, 과연 앞으로 공모제 자체가 유지될 수 있을 것에 대한 회의감마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설사 공모제를 도입한다 해도 사전에 암묵적 협의를 통해 공모 절차가 진행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아무런 연줄이 없는 민간 출신은 대부분 들러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중요한 것은 ‘관료 낙하산’은 공공기관 개혁에도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 권해수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특히 ‘관료 낙하산’은 정부와 산하기관의 끈끈한 유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단순히 자기 식구를 챙겨주는 ‘보은 낙하산’보다 폐해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정운영의 두 축인 정치권과 관료집단이 상호묵인 하에 산하기관장을 사이좋게 나눠 갖기 시작한다면, 정치적 배경 없는 능력있는 민간인사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전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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