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린 첫 한중일 단독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공동체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는 듯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금융위기 극복에 서로 합심해 노력하면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경제위기를 3국의 존재를 과시하는 기회로 삼자고 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 역시 "3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의 16.7%가 되므로 정상의 정기적 만남이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영토ㆍ역사에 막힌 동북아 협력
금융위기의 타격으로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질서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런 흐름을 타고 동북아 3국이 서유럽의 주축인 독일과 영국, 프랑스 정도의 '파워'를 과시하자는 이야기도 제법 솔깃하게 들린다. 하지만 한중일이 국제사회에서 그만한 존재감을 과시하기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GDP나 무역 규모로만 본다면 한중일의 역량은 영불독에 견줄 만하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왜소하지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나 매년 두 자릿수로 경제가 급성장해온 중국에 힘입어 3국의 2007년 GDP 합계는 8조5,912억 달러에 이른다. 같은 시기 영불독은 8조6,474억 달러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불독과 한중일을 나란히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우선 한중일은 국가간 경제 수준 차이가 크다. 영불독의 1인당 국민소득(2007년 기준)은 모두 4만 달러 남짓으로 비슷하다. 한중일은 한국이 2만 달러를 조금 넘고, 일본은 3만5,300달러 정도이지만 중국은 아직 2,000달러에 불과하다.
한중일의 구심력을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것은 미해결된 영토ㆍ과거사 문제다. 한일의 독도, 중일의 센카쿠(尖閣) 제도 문제는 늘 대화 분위기를 해쳐왔다.
독일과 프랑스는 공동으로 고교용 근현대사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치고 있지만 한중일은 역사교과서가 여전히 중요한 갈등 요인이다. 동북아 협력 논의는 중국의 적극적인 개방과 한중 수교 이후 어림잡아도 십 수년을 헤아리지만 그래서 논의한 만큼의 결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북아 협력의 미래를 부정적으로만 볼 건 물론 아니다. 한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직업훈련사업 등을 공동으로 벌이기로 합의했다. 기존의 경제ㆍ문화공동체 논의와는 다른 양국 협력의 새로운 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최근 한일 외무장관 회담 결과, 두 나라는 아프간인 직업훈련 교관 양성을 위해 한일 양측 전문가를 카불 인근의 '한ㆍ아프간 직업훈련 센터'에 공동 파견키로 했다. 현지 비정부기구(NGO)와 콩품종 개발도 지원한다. 양국이 국내에서 실시 중인 아프간인 초청 연수 프로그램에 양국 전문가를 교환 초청해 아프간인 연수생을 교육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기대할 만한 아프간 공동지원
한국은 내년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을 목표로 해 본격적인 대외 원조를 시작하려는 나라이지만 일본은 한때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많았던 나라다.
시민단체의 개발도상국 사업 경험도 풍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불독이 아프간에 군대를 보낼 때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민간 지원에 힘을 쏟는다는 점이다. 아프간 지원사업이 한일의 국제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양국의 협력을 공고히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마지 않는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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