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금융시장은 '복합불안'상태다. 작년 9월처럼 메가톤급 단일 악재(리먼 사태)는 없지만, 산재한 불안요소들이 모이고 뒤엉켜 심리를 계속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이번 위기는) 지난해 만큼은 아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무엇 하나가 현실화될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극심한 패닉현상을 경험한 투자자들은 최근 파산설이 파다한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붕괴를 두려워 한다. 미 백악관은 17일 GM이 제출한 자구계획안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여 시장불안을 지속시켰다. GM 파산은 단지 미국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투자자들의 현금확보, 안전자산 선호심리를 부추겨 우리 같은 신흥국에서 또다시 대거 돈을 빼가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단골소재지만 최근 다시 부각된 북한 리스크 역시 마찬가지. 행여 미사일 발사가 현실화될 경우, 외국인들은 즉각 투자금 회수의 방아쇠를 당길 것으로 보인다. 한 외환딜러는 "요즘처럼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미사일이라도 쏘면 불붙은 환율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은행들은 다시 외화조달난에 시달리고 있다. 시장 전반의 불안이 은행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셈. 특히 달러를 빌릴 때 얹어줘야 하는 가산금리가 급상승세다. 얼마 전 우리은행이 외화 후순위채를 조기상환하지 않기로 한 뒤 '외환수급이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5%대였던 우리은행의 외화조달금리는 최근 15%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에 하나은행은 최근 정부보증을 통한 외화채권 발행조차 연기한 상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외자조달 시장이 최근 악화되면서 은행들이 일단 대기하는 분위기"라며 "당분간 중장기 차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들어 또다시 부각중인 주식시장 내 외국인 순매도 행진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면 환율이 뛰고, 환율이 뛰면 환차손 때문에 외국인들이 주식을 또다시 팔아 환율이 더욱 급등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악재가 가득한 여건상, 더구나 난마처럼 뒤엉킨 악재들의 특성상, 당분간 환율 상승세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다음 지지선으로는 당장 1,500원 돌파보다 1,480원선 정도를 점치는 분위기다. 외환은행 김두현 차장은 "최근 환율 급등세는 위기의 진원인 미국의 금융구제안에 대한 실망을 반영하는 듯 하다"며 "지난해와 달리 시장 참가자들에게 패닉 양상은 보이지 않아 1,500원선에 가까이 갈수록 상승 속도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대형 악재가 터지지 않는다면"이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