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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소년교도소 5명 방송고 졸업 '희망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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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소년교도소 5명 방송고 졸업 '희망을 쏘다'

입력
2009.02.1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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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출감하면 학교도 다니고 못다 한 효도도 하겠습니다."

18일 오전 11시 충남 천안소년교도소 다목적 홀에서 열린 방송통신고교 졸업식은 여느 학교의 졸업식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5명의 졸업생은 대학 졸업식에서나 볼 수 있는 검은 가운과 모자를 걸쳤다.

이들에게 출장수업을 해 온 천안중앙고의 김광희(57) 교장이 생애 단 한 번뿐인 고교 졸업식에서도 푸른 수의(囚衣)를 벗을 수 없는 이들의 딱한 처지를 배려해 마련해준 것이다.

졸업식에 참여한 가족 60여명은 철없던 시절 살인, 강간 등 죄를 저질러 세상과 단절됐다가 어렵게 새 삶을 찾은 이들이 가운 차림으로 당당히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더러는 설움이 복받친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모범상을 수상한 김철민(20ㆍ가명)씨의 표정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방송고에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되면서 벼랑으로 떨어진 줄 알았던 내 인생에도 희망이 되살아났어요. 고3 여름방학 끝날 무렵 멈춰버린 '인생시계'가 새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고1 때 부모가 이혼한 뒤 방황하기 시작한 김씨는 고3 때 성폭행을 저질러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던 그는 지난해 교도소에서 운영하는 천안중앙고 부설 방송고 3학년에 편입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평소엔 방송 강의를 듣고 매달 1ㆍ3주 일요일 교도소 2층 공부방에서 천안중앙고 교사들에게 수업을 받는다. 11개 과목을 한꺼번에 배우느라 부담이 크지만, 혼자 공부하며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 공부방에는 항상 열기가 넘친다.

김씨는 연습장과 교과서에 손때가 묻어 새까맣게 변할 만큼 공부에 재미가 붙자 새로운 인생 설계에 대한 용기도 솟구쳤다고 했다. 남은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8월 출감하면 내년 대학 입시에 도전할 생각이다.

요리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는 그는 2010학년도 2학기 수시를 목표로 이미 대입 준비에 들어갔다. "그동안 도와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항상 걱정만 끼쳐드린 부모님에게 효도 해야죠. 앞으로 저처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열 다섯에 살인죄로 15년형을 받은 서모(20)씨는 앞으로도 11년 9개월을 담장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길고 어둡기만 했던 터널의 끝이 작지만 또렷한 불빛으로 보인다. 서씨는 이날 졸업식을 찾은 홀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래 희망을 얘기했다.

서씨는 당장은 어렵지만 출소 전에 대학에 입학해 졸업까지 한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그는 "소년원에서 일반교도소로 이감되더라도 작업을 통해 적으나마 돈을 벌 수 있다. 어머니 도움을 받지 않고 학비를 벌어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패션모델이 꿈인 박모(20)씨는 TV에서 본 패션쇼의 모델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강당 마루바닥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는 "잠들기 전 대여섯 뼘 남짓한 좁은 통로를 돌며 휘황찬란한 조명이 나를 비춰주는 광경을 상상하곤 한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경의성 소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졸업을 하는 원생들이 대견스럽다"며 "남은 수형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사회에 복귀해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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