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졸업식날 한번 입으려고 양복 왜 사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졸업식날 한번 입으려고 양복 왜 사요"

입력
2009.02.19 07:00
0 0

엊그제까지만 해도 코흘리개였던 막내가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하네요. 며칠 전 큰 아들이 동생 졸업식 날 입을 옷을 사주라고 하더군요. 마음이야 뭐든 다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하지만 당장 2월 달에 아들 둘 등록금만해도 얼마인데…. 어디 등록금만 드나요? 입학하면 이것 저것 해서 아마도 돈 천만원은 들 텐데….

그렇지 않아도 워낙 패션에 관심이 많은 큰 놈이길래 "학생이 교복 입고가면 되지 무슨 옷을 사냐?"고 하면서 그냥 듣고 스쳐 지나갔습니다. 도대체 큰 놈은 생각이 있는 건지 가정형편은 생각지도 않고 말을 합니다. 작년 이맘때 큰 놈 졸업식 때는 큰맘 먹고 양복을 사주었죠. 그런데 두 번인가 입고는 그대로 장롱 속에 있답니다.

며칠 뒤 가만히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큰 아들은 늘 맏이라고 해달라 하면 형편껏 해주었는데 막내는 정말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작은 아이한테 옷 사러 가자고 하니까 "필요 없어요, 아무거나 입으면 돼요"라고 합니다. 형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큰 놈은 있으면 그냥 쓰는데 작은 아이는 요즘 애 답지 않게 너무나 구두쇠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차비 외엔 한 달에 용돈 만원도 안 썼습니다. 수능을 치른 뒤에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그 동안 못한 것들 해보라 해도 그냥 방안에서 컴퓨터만 합니다. "밖에 나가면 차비에 점심 먹고 돈을 얼마나 쓰는데, 안 나가면 그 돈 버는데…" 이런 소릴 들으면 속이 상합니다. '내가 너무 아이들 앞에서 돈 돈 했나보다'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동생이 졸업식에 아무거나 입고 가려고 하니까 큰 아이가 화를 냅니다. "그러니까 옷 하나 사주라 했는데…" 하면서 궁시렁 거립니다. 그래서 큰 놈이랑 입씨름을 했습니다. "여유만 있어봐라. 양복이 문제냐구. 넌 엄마 마음을 알기나 하니?" 한바탕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잠시 후 큰 놈이 작년에 자기가 입었던 양복을 꺼내줍니다. 너무 큰 윗도리 대신 바지만 입히고 그 위에 제 옷으로 코디까지 해주네요. '무슨 졸업식이 선 보러 가는 덴지…, 그리고 졸업식 날은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으면 좋으련만….' 속상해서 괜히 학교를 원망해보기도 합니다.

형 옷을 입은 작은 아이를 보니 눈시울이 적셔져 옵니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봅니다. 세상 사는 일이 왜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건지….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집니다. 그래도 작은 아이는 "엄마, 졸업식날 한번 입을려구 비싼 양복을 왜 사요? 형 옷이면 어때요. 괜찮아요" 하면서 좋아합니다. 그리곤 "엄마, 이따가 봐요" 하면서 먼저 현관을 나섭니다.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럽습니다. 울 아들 너무 이쁘죠? 이제 나도 준비를 하고 졸업식에 가야겠네요.

부산=김영자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