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뼈아픈 이별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투자도 마찬가지. 제아무리 손실이 커도 희망이 없다면 미련을 버리고 과감히 정리하는 게 정신 건강과 재테크에 이롭다. 최근 정리 1순위로 거론되는 것은 러시아펀드다.
러시아펀드의 작년 한해 수익률은 -78.06%. 규모가 다른 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지난해 모든 해외펀드(중국 -54.40%, 브라질 -47.90%)가 다 망가져 묻혀 갔을 뿐 찬찬히 뜯어보면 최악이다. 현재 러시아펀드 전체 설정액은 8,000억원 수준으로 덩치 큰 중국펀드 3개(9,000억원)를 합쳐놓은 것만 못하다.
무엇보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형국이다. 최근 3개월간 브라질(7.16%)은 승승장구, 중국(3.50%)은 약진, 인도(-6.17%)는 겨우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28.13%)는 사경을 헤매고 있다. 심지어 일부 러시아펀드는 기준가(펀드의 가치)가 100원 밑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신흥시장의 강자를 일컫는 브릭스(BRICsㆍ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빅스’(BICs)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초만해도 ‘자원부국’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중국펀드의 대안으로 ‘반짝’했던 러시아펀드는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일까.
당분간 없다는 게 대세다. 무참하게 망가진 이유를 살펴보면 ‘동토의 땅’ 러시아가 왜 빙하기로 접어들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경제는 1998년 채무불이행 선언 이후 최악이다. 유일한 돈줄이던 에너지(원유 천연가스 등) 가격은 하락한데다, 루블화 가치는 11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폭락했다. 외환보유고는 환율을 방어하느라 탕진했다. 금융불안, 유동성 악화, 기업파산 위험 등 악재란 악재가 엉키고 엉킨 꼴이다. ‘연초 랠리’를 즐겼던 글로벌 증시의 소폭 반등행렬에 동참하지 못한 게 당연하다.
전망은 더욱 차갑다. 러시아의 총 대외채무(작년 3분기 기준)는 여전히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어서고 있다. 치솟는 환율(루블화 가치 폭락)은 수입물가 폭등, 소비 축소를 부채질하고 있다. 기업들은 과도한 대외 빚에 허덕이고 있다.
설상가상 국가파산(채무불이행) 가능성도 새 나온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4개월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다른 국가들이 강력한 경기부양책과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놓는 사이 러시아 정부는 오히려 그루지아와의 전쟁 등 위기를 키우는 일에 몰두했다. 만약 유가 하락세마저 지속된다면 추락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펀드의 비중 축소를 강력히 권하고 있다. 더 나아가 ‘러’자가 들어간 국가혼합펀드도 안심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러시아의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동유럽투자펀드, 15% 안팎인 브릭스펀드 등이다. 이들은 러시아 시장의 추가 하락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정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최근 러시아 증시가 조금 올랐지만 낙폭과대에 따른 기술적 반등에 불과하다”며 “차라리 이 같은 반등 때마다 조금씩 환매해 (러시아의) 비중을 축소하는 게 현명한 투자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장기투자 관점에선 현재 가장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중국 및 브라질펀드로 갈아타는 게 방법이고, 세금 이슈를 감안한다면 비과세 혜택이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 해외펀드보다 국내펀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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