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
내 책읽기가 아름다워진 건 독서가 가장 낙후된 장르였던 시대였다. 황량한 이 별의 느낌이 좋아서 나는 옥상에서만 문장을 만들고, 필라멘트를 쥔 작은 전구는 가족들의 불면을 향해 좀 더 걸었다. 두 발을 한쪽 구두에 집어넣은 기분으로 계단이 시작된다. 악연은 모두에게 신발같은 것이고 이제 난 그것 한 켤레로 걸음이 점점 편해질 것이다.
팔다리 자라는 소리가 하나가득 귀를 울리는, 그보다 더 지루한 성장은 없었다. 문지른 책받침에 머리카락이 떠오르는 걸 여자애는 한 올 한 올 들여다 본다. 책을 읽은 당신은 푸른 공을 끌어안고 최초의 파충류처럼 태양에게 말을 걸었다: 우린 늘 태어나지 못한 자들이고, 머리 타래는 잘라 반수(半獸)의 신(神)에게.
이 시를 나는 작은 메모지에 베껴서는 어디를 가든 들고 다닌 적이 있었다. 시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소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시 속에 영글어 있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유배,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이 가장자리에서 서성거리는 느낌 때문이었다. 한 번 이 시를 쓱 읽고는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기도 했고 여러번 꼼꼼하게 소리죽여 읽기도 했고 어느날은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눈 앞을 서성거리는 음악!
어떤 시들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시들은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 시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떠오르는 것은 거의 멸종 위기에 있는 사유가 음악으로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말이 순간이지 아주 긴 시간 동안 마음 속을 흘러다닌다.
우린 늘 태어나지 못한 자들이라고 한 인간이 말할 때 어떤 음악이 그 존재의 중심을 흐를까?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머리칼을 유일신이 아닌 유일신 이전 신화 속에서 살아가던 반수의 신에게 바치는 한 존재의 주변을 흐르는 음악은 또 어떤 것일까? 그 사유를 위해 이 시는 낡은 책장에 꽂혀있는 것 같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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