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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1세기형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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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1세기형 사회주의

입력
2009.02.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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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차베스가 10년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언론은 그를 기인 혹은 포퓰리스트로 소개했다. 실제로 당시 언론에 비친 그의 언행은 그 동안 전해진 다른 정치 지도자의 그것과 여러 모로 달랐다. 지금 돌아보면 그의 정책 혹은 비전을 도외시한 채 돌발적인 언행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쉽다.

차베스가 논란 속에서도 10년 동안 베네수엘라를 이끈 것을 보면서 그의 정치력 혹은 정책을 가볍게 여긴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가 빈곤층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정치, 사회적 참여의식을 불어넣었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15일에는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안이 통과돼 차베스의 장기 집권이 가능해졌다.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려면 1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는 게 개헌의 명분이었다. 맑은 물도 고이면 썩듯,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장기 집권하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어서 개헌안 통과가 걱정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그것을 택했다.

21세기형 사회주의는, 2월 초 끝난 세계사회포럼에서 차베스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로 대통령,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 등이 함께 역설하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탐욕과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 정책은 실패로 끝난 잘못된 시스템"이라며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안인 21세기형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투쟁할 것"을 촉구했다.

베네수엘라와 함께 21세기형 사회주의를 향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나라가 볼리비아다. 볼리비아는 최근 사회주의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본격적인 체제 정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개헌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자 지역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든, 볼리비아든 이들이 밝힌 21세기형 사회주의는 대체로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부의 집중과 외부 유출을 막고 토지를 재분배하며 원주민의 권익을 신장하고 공교육과 의료의 수혜자를 확대하되 이를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살펴보면 이들의 주장에 명분이 적지 않다. 가령 뉴스위크에 따르면 볼리비아는 전 국토의 3분의 2를 전 인구의 1%도 안 되는 소수의 지주가 소유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도 석유로 버는 돈이 미국 석유자본과 과두 세력에게 들어갔을 뿐 일반 백성은 가난에 시달렸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며 21세기형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남미의 21세기형 사회주의에 눈길이 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회 문제를 푸는 그들의 방식이 우리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경제적 통제 장치를 완전히 벗기고 있는 중인데 그들은 반대로 국가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물론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의 정치 경제적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데다 사회주의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에 남미의 21세기형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의 모델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는 와중에 남미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며 그 어느 지역보다 새로운 사회 건설에 열심이다. 그것이 정치적 구호에 그칠 수 있고, 정치인의 인기 영합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저렇게 힘껏 새로운 사회를 외치는 그들이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 궁금한 건 사실이다.

박광희ㆍ국제부장 직대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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