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우니 각국마다 무역장벽을 높여 저부터 살고 보자는 움직임일텐데요. 한쪽에서는 결국 보호무역이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보호무역에는 절대 반대 입장인데요. 왜 이렇게 논란이 뜨거운 걸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지난달말 하원을 통과한 미국의 경기부양법안이 국제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는 경기부양 예산으로 집행되는 공항, 교량, 운하, 댐,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관련 사업에 오직 미국산 철강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인데요.
당장 미국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캐나다를 비롯해 유럽연합(EU)과 중국까지 나서서 보호무역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보호무역이 뭐죠?
보호무역이란 한 나라의 정부가 자국산업을 보호하거나 육성할 목적으로 관세 등 수단을 이용해 외국과의 무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수입품에 매기는 관세를 높여 수입을 어렵게 한다든지 수출품을 만드는 산업을 지원해서 수출을 장려하는 등의 정책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조항도 자국의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철강 수입을 정책적으로 억제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보호무역의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그래서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에 철강을 수출하는 국가들로서는 불공정무역이라고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죠?
보호무역의 수단은 크게 관세와 비관세장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관세는 국경 또는 관세선을 통과하는 물품에 부과하는 조세로, 수출관세와 수입관세가 있습니다.
수출관세는 수출품에 부과하는 관세로서 브라질의 커피, 쿠바의 담배처럼 일부 세계적 독과점 상품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관세라 하면 거의 대부분 수입품에 부과하는 수입관세를 말합니다.
수입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그만큼 가격이 올라 소비량이 줄고 결국 수입이 줄게 되지요. 이 수입관세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중세 시대부터 이용되어 온 전통적이고도 대표적인 보호무역정책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관세장벽은 관세를 제외한 무역에 대한 모든 인위적 규제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 내용도 복잡하고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만 꼽는다면 ▲수입되는 물품의 양을 직접 제한하는 수량제한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수출업자에게 주어지는 직간접의 지원금인 수출보조금 ▲수입을 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입허가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 수입되는 물품이 갖춰야 할 환경ㆍ안전 등의 심사기준 강화를 통하여 수입을 제한하는 등 새로운 비관세장벽도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세계 각 나라들이 보호무역의 수단으로 관세보다는 비관세장벽을 많이 사용합니다. 관세를 높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인 무역규범인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위반으로 즉각적인 제재와 상대국의 보복조치를 받기 쉬운 반면, 비관세장벽은 그 성격이 애매모호해 보호무역 조치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유무역은 뭔가요?
보호무역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유무역주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간의 무역장벽을 낮추거나 철폐해서 무역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때 무역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들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각 나라들이 저마다 ‘비교우위’(풀어읽는 키워드 참조)를 가진 재화를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이렇게 생산된 재화들을 무역을 통해 나누는 것이 한 나라에서 모든 재화를 생산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비교우위론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을 통해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이 통합되면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 소비자들은 다양한 재화를 더 싼 값에 구입할 수도 있게 됩니다.
또 자유무역은 기업들로 하여금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외국의 기업들과 경쟁하게 함으로써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고 기술혁신을 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장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대체 왜 다시 보호무역 바람이 부는거죠?
이런 자유무역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한 국가의 산업이 외국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할 때까지 일정 기간 동안은 관세 등의 제도를 통해 보호해야 한다는 ‘유치산업 보호론’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특정 산업이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나 잠재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적절히 보호만 한다면 장래에는 비교우위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보호무역은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얘기한 바이 아메리칸 조항뿐 아니라 미국의 이른바 ‘빅3’라 불리는 자동차업체에 대한 정부의 융자, 항공ㆍ철강ㆍ자동차 산업 등에 대한 EU의 금융지원 등 모두가 이들 나라의 주력산업을 지원하는 것이니까요.
이는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경제에 불황이 올 경우 각국 정부는 국내 경제를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입을 억제해 지출을 가능한 한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에 집중시키는 한편, 수출을 장려하는 보호무역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실제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미국과 EU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관세를 인상하고 수입허가제를 도입하거나 수출촉진을 위해 국내산업을 지원하는 등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습니다.
부작용은 없을까요?
만약 이런 식으로 모든 나라들이 무역장벽을 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된 이후 미국에서는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이라는 보호무역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2만개 이상의 수입품에 대해 최고 40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 했던 이 법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무역장벽을 쌓는 무역전쟁을 촉발해 대공황을 오히려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불황이 왔을때 수입을 제한하는 보호무역 정책은 다른 나라 수출 산업의 궁핍화를 초래한다고 해서 경제학에서는 이를 ‘인근궁핍화 정책’이라고 하며, 그 피해는 인근국들뿐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까지도 미친다는 것을 위 사례는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지금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경제 위기는 각 나라들이 자국 산업만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역장벽을 쌓는 데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협력과 신뢰를 통해 무역이 확대되고 이로써 전 세계적인 수요가 살아나야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 풀어가는 키워드
● 비교우위란
생산비용이 타국보다 비싸도상대적으로 싸게 만드는 '우위'
어느 나라의 제품 생산비용이 모든 제품에서 다른 나라보다 더 비싸더라도 그 중 상대적으로 싼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각국이 서로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제품에 특화하여 생산을 하고 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과 교환하면 각각 모든 제품을 생산하여 자급자족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소비할 수 있어 두 나라 모두가 이득을 보게 되는 거죠.
한국은행 조사국 안동준 조사역
■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는…
실제로 요즘 각국은 어떤 보호무역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까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1일 세계무역기구(WTO)의 긴급조사 결과를 인용해 최근 부쩍 늘어난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를 전했습니다.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가속화되자 지금까지 모두 16개국이 19건의 보호무역 조치를 새로 도입했다는 겁니다.
보호무역의 대표격인 관세 인상 조치를 한 6개 나라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됐습니다.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를 1~3% 올렸다는 겁니다. 에콰도르는 940개 품목의 관세를 일제히 올렸고, 우크라이나는 일부 품목에 대해 13%의 추가 관세를 임시로 부과하고 있다지요.
두 나라는 수입장벽을 높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자동차 부품과 TV 등의 수입에 사실상 허가제를 도입했으며, 인도네시아는 의류와 완구 등을 수입할 수 있는 항만과 공항을 제한했습니다.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 등을 신설한 나라도 10개국에 달했는데요.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 등 대형 자동차 업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융자와 항공ㆍ철강ㆍ자동차 산업 등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금융지원 등이 포함됐습니다.
중국이 자동차세를 낮춰 사실상 구입 보조금을 준 것과 한국이 자동차 부품업체에 대해 세금 감면 조치를 한 것 등도 국내산업 보호조치로 거론됐구요. 노동장벽과 관련해 말레이시아는 최근 일부 산업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을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다른 나라의 보호무역 조치가 자국에 피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세계 각국은 일단 겉으로는 입을 모아 보호무역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18개 주요 회원국들이 참가한 가운데 WTO 비공식 각료회의가 열렸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특히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조항에 우려와 불만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 탓인지 미국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 “보호무역은 문제가 있다”며 일단 한 발 물러서는 듯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각국 대표들은 다보스 회의에서 보호무역 확대를 막기 위해 새로운 감시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WTO의 이번 조사도 새 감시체제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다는군요. 새 제도는 피해국의 제소가 없더라도 WTO가 자체 조사하거나 시정을 요구해 보호무역의 확산을 막는 것으로 이달 중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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