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리더 김태원(45)은 마치 모퉁이에 숨어있다가 놀래주기 위해 갑자기 튀어 나온 듯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TV에 등장하고 있다. 무거운 과거와 근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로 덮여 있던 중년의 로커는 스무살이나 어린 연예인들 사이에서 뒤지지 않는 실력의 입담으로 예능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MBC TV '라디오스타'의 초대손님으로 나와 "날아가는 벌이 유에프오였다"는 식의 토크로 히트를 친 후, '명랑 히어로' '놀러와' '스타골든벨' 등 지상파 예능 프로를 순례하며 주가를 올리느라 바쁘다.
외로운 록의 그늘 대신 예능의 양지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태원이지만, '마지막 콘서트', '희야', '사랑할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 등 80년대 이후 록발라드 무대를 장식한 수많은 명곡을 만든 주인공이라는 본색을 벗지 않았다. 그는 16일 자신의 데뷔 25주년 헌정음반 '송북' 발매에 이어 3월엔 부활의 첫 보컬인 김종서와 함께 신보를 내놓을 계획이다. 13일 밤 일산에서 만난 김태원은 "인생의 단 한 포인트도 음악을 잊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일은 예상대로 일어나지 않아요. 다 우연이죠. '우연에서 기적으로'가 제 인생모토에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은 것도 마찬가지죠. 말하는 걸 좋아하고, 그러다 김구라의 도움으로 예능에 등장했고…. 그래도 토크를 할 때 가벼워지지 않으려고 굉장히 조심합니다. 직업이 로커니까 인생과 사상이 담길 수 있게 하죠. 왜 음악인이 예능에 나오냐고요? 음악으로 나올 데가 없잖아요. 음악인이 존중 받는 사회가 선진국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 저 혼자 반기를 들 수 없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결과죠."
'부활'의 부활을 원하는 그의 동료, 후배 뮤지션들이 1년 여의 준비 끝에 내놓은 헌정음반엔 문희준이 부르는 '마지막 콘서트'를 비롯해 박상민의 '희야', 신인그룹 S.T.Child의 보사노바 풍 '희야', SG워너비의 '네버 엔딩 스토리', 이루의 '사랑할수록' 등이 실렸다. 현재 부활의 보컬인 정동하의 곡도 수록됐다. "외부에서 이런 앨범을 만들자고 먼저 제안해 영광이라고 답했죠. 누가 참여하면 좋겠다고 간섭한 적도 없어요.
문희준이 '마지막 콘서트'를 부른 걸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친구야 말로 록에 대한 애정이 있고 제대로 아는 가수에요. 이번 앨범에도 스스로 믹스를 다하고 스튜디오 작업에 항상 함께했죠. 곧 있으면 김장훈, 신해철 등이 참여하는 '송북2' 도 나옵니다."
1986년의 첫 앨범과 고인이 된 김재기의 '사랑할수록', 이승철이 부른 '네버 엔딩 스토리'를 빼면 부활의 20여 년 세월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불세출의 두 보컬을 오래 품지 못한 김태원은 폐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부활은 노를 잃은 배였죠. 바다를 헤매다가 가끔 섬을 만나는데 그게 세 번의 대박 앨범이었고요.
그 동안 9명의 뮤지션이 거쳐갔는데 최고는 김재기에요. 보컬이 없어서 힘들던 때 목사 친구가 김재기를 데려왔어요. 그 음색과 눈빛에 반해 바로 보컬로 뽑았죠. 하지만 그는'사랑할수록'의 데모를 녹음한 다음날 홍은동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남긴 이 한 곡의 히트로 부활 3집은 100만 장이 팔렸습니다."
최근에 김태원은 오랜만에 가수로 돌아온 원준희의 '사랑해도 되니'를 만들어 대중적인 작곡가의 면모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상반기 중에 나올 김종서와의 앨범과 부활의 정규앨범에도 큰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김종서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데 앨범을 함께 낸 적이 없어서 지금의 부활 멤버들과 김종서가 함께하는 특별한 음반을 만들게 됐어요. 다 신곡이고 2곡을 김종서가, 2곡을 제가 썼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에게 요즘 대중음악가사의 가벼움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했다. 시의 한 연을 퍼온 듯한 수려한 가사를 써온 그로서는 할 말이 많은 얘기일 것 같아서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얘기하면 거짓입니다. 히트곡을 하나 내려면 고생을 하며 얻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죠."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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