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안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 제4전시실에는 높이 2m 가량의 넓적한 돌판이 서 있다. 어둑한 흑요암(黑曜岩) 덩어리인데다 마모가 심해 가까이 다가서도 표면에 새겨진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다. 국보 228호인 이 돌판의 이름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조선 태조 4년(1395)에 만들어진, 돌에 새겨진 것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별자리 지도다. 이 판에 새겨진 별자리를 3차원 스캐닝 기술을 통해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16일 진행됐다.
"카노푸스(Canopus)다!"
모니터를 주시하던 고천문학 연구자들이 짧은 탄성을 질렀다. 카노푸스는 용골자리의 알파성(首星)으로 지구에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 중 두 번째로 밝은 별이다. 지구로부터 180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관측되는 카노푸스의 별빛은 180년 전의 것이 된다. 이날 모니터에 표시된 것은 790여년 전 카노푸스의 흔적이다. 조선 초 과학자들이 돌판에 새긴 노인성(카노푸스의 동양식 이름)이, '비접촉 광학방식 3차원 레이저스캔'을 통해 600여년의 시공을 넘어 또렷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용골자리의 다른 별들도 차례로 모습을 나타내고, 각 별의 크기가 모니터 위에 수치로 표시됐다. 컴퓨터가 계산해 낸 천문도의 카노푸스 크기는 직경 1.8mm, 깊이 0.8mm.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 선임연구원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별자리의 단순한 위치만 표시한 다른 나라의 고천문도와 달리,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와 깊이를 다르게 표기했다"고 설명했다. 조명을 켜지 않은 전시실은, 모니터에 떠오르는 별자리를 들여다보는 연구자들의 흥분으로 마치 작은 천문대를 연상케 했다.
이날 스캐닝 작업은 가로 123cm, 세로 211cm 크기의 천문도 표면을 50여 조각으로 나눠 브로이크만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촬영한 뒤, 3차원 그래픽 기술을 통해 하나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천문연구원은 디지털로 재구성한 종합적인 천문도의 모습은 일주일 후쯤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작업 현장에는 창경궁 안에 방치돼 있던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발견해 국보로 지정케 한 전상운(81) 전 성신여대 총장도 참석했다. 전 전 총장은 "40여년 전 (당시) 창경원에서 이 천문도를 발견했을 때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깔고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천문도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건국의 정당성을 천하에 알리고, 천문 지식을 실생활에 쓸 수 있게 하려 만든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하면서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고 말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의문점은 왜 똑 같은 내용의 천문도가 앞뒤로 새겨져 있냐는 것이다. 특히, 한 면은 반대 면과 비교할 때 아래 위 방향이 거꾸로 새겨져 있지만 그 이유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조선 초 문신 권근(1352~1409)은 <양촌집(陽村集)> 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든 경위를 '옛날 평양성에 있던 석각 천문도의 인본(印本ㆍ종이에 찍은 것)을 바탕으로 했으나, 원래 천문도가 너무 오래돼 별의 위치가 차이가 나므로 이를 바로잡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양면 석각에 대한 기록이나, 수정한 별자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사료로 남아 있지 않다. 양촌집(陽村集)>
전 전 총장은 "한쪽 면은 아마 세종 15년에 제작됐다고 <증보문헌비고> 에 기록된 천문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양 선임연구원은 "오늘 스캐닝 작업을 통해 나온 정밀 지도를 겹쳐 별자리의 이동과 연계해 보면 어느 쪽 면이 태조의 것인지, 또 다른 면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계산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보문헌비고>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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