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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7) 내가 좋아하는 역대 美대통령(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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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7) 내가 좋아하는 역대 美대통령(Ⅲ)

입력
2009.02.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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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뉴욕에서 활동하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재선을 위한 한인 후원회에서 전화가 왔다. 뉴욕 일대 한인 교포들을 대상으로 부시 대통령의 선거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디너파티를 크게 벌일 예정이니 참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들은 맨해튼의 유명 호텔에서 약 500명의 지역유지만 초청해 치르면 1인당 500달러짜리 디너로 할 때 비용을 다 빼고도 20만 달러는 모을 것이란 계산을 한 것 같다. 그들은 만일 내가 합세하면 500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으니 그 차액을 내게 선거자금으로 도와 주겠다고 했다.

나는 부지런히 뉴욕으로 갔다. 너무 일찍 도착해 아직 주최자들이 준비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호텔에는 로비에서부터 사방에 디너파티 사인이 붙어 있었다. 내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어차피 부시 대통령이 주연이기 때문에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파티 시작은 오후 6시30분 예정이었지만 5시부터 벌써 귀에 마이크를 꼽은 경호 요원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바깥 길은 바리케이드로 차단되고 경찰 사이렌 소리는 계속 울려댔다. 나도 얼른 이름표를 달았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밖으로 쫓겨날 뻔했다.

나는 헤드테이블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단 둘이 앉게 돼 있었는데, 부시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라 마음이 설레었다. 당시는 부시의 인기가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정치 분석가들은 그가 쉽게 재선될 것으로 예측했다. 오후 6시30분 정각에 부시 대통령이 삼엄한 경호 속에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입장했다. 그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실물은 사진보다 훨씬 미남이고 신사다웠다. 다행히도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까지 기억하는 바람에 나는 너무 기뻤다.

그런데 둘이 나란히 위에 앉아 아래 파티 룸에 차려놓은 테이블을 보고 우리는 너무 놀랐다. 테이블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8명씩 앉게 돼 있는 테이블 65개로 파티 룸을 채웠는데 사람이 없었다. 500명은커녕 50명도 안 돼 보였다. 주최자들이 초조한 모습으로 들락날락하며 수군대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나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옆눈길로 부시 대통령을 쳐다보니 약간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 사람들은 좀 늦게 오는 습관이 있다며 웃어 넘겼지만 속이 탔다. 30분이 지나 7시가 됐는데도 행사장은 3분의1도 차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앞서 부시 대통령과의 대화에도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장내만 둘러 보았다.

할 수 없이 부시 대통령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아래로 내려가 주최 측을 붙잡고 물으니 교통난 때문이라며 곧 모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30분을 더 기다려 행사 시작을 7시30분까지 한 시간이나 미뤘지만 더 이상 오는 사람은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내게 자기도 저녁 늦게 약속이 있어 더 오래 기다릴 수 없다며 평소의 미소를 잃지 않고 얘기했지만,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할 수 없이 파티 룸이 텅 빈 채 식사가 시작됐다. 음식을 나르는 웨이터가 손님 수보다 더 많아 보였다. 빨리 서둘러야 했기에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끝내고 내가 먼저 간단한 발언으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부시 대통령 역시 간략하게 미국 내 눈부신 한인사회를 칭찬하는 김빠진 연설을 했다. 언론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연설이 끝나고 황급히 나가는 부시 대통령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았다. 그 날 모인 돈으로 식비 지급도 어려워 부시 대통령에게 약속한 20만 달러를 10만 달러로 하향조정하고 앞으로 2주 안에 부시 선거위원회에 전달하기로 했지만 그나마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연하다고 주최측은 얘기했다. 당연히 내게 약속했던 3만 달러는 없었던 일로 해줬으면 고맙겠다고 간청했다. 나는 "내 걱정은 말라"고 답변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선 부시대통령이 대동한 수행원들에게 창피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 다음 날 행사를 주최하기로 한 단체가 반대파들로 인해 둘로 쪼개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게다가 누군가 행사가 갑작스레 취소됐다는 소문을 퍼뜨려 이런 악재가 발생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주최측은 빨리 다시 모임을 소집해 부시 대통령에게 약속한 금액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신문을 훑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워싱턴 정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송이 클린턴의 인기가 상상 외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대통령 후보간 첫 TV토론에서 완벽하게 준비된 클린턴은 평범한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차트까지 펴놓고 얼마나 경제?나빠지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잘 생기고 젊은데다, 패기에 찬 클린턴에 비해 자기 업적만 지루하게 늘어 놓는 늙은 부시 대통령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사실 클린턴은 민주당의 거물급 인사들이 부시의 인기에 눌려 아예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고 4년 뒤를 노리는 바람에 심각한 경쟁자 없이 민주당 후보 예비선거에 당선됐다. 그런 클린턴에 대한 지지가 갑자기 올라가고 있다고 하니 무척 놀라웠다. 그의 부인 힐러리 역시 멋진 미인으로 아칸소 주에선 이름난 변호사였다.

힐러리도 남편 클린턴의 선거에 동참해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데 성공적 역할을 했다. 언론들은 부시의 부인 바버라 여사가 전통적 영부인답게 조용히 내조만 하는 타입인데 비해 힐러리는 공격적 행동으로 유권자들이 야릇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고 보도했다.

약 한달 뒤 부시 대통령을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피곤해 보이고 자신감이 흔들리는 등 패배자의 모습이 엿보였다. 안타까웠다. 내가 아는 부시 대통령은 착하고 온건하면서도 자신감이 뚜렷한 신사였다. 뜻밖에도 재선에 실패한 부시는 할 말을 잃은 듯 민망해서 상기된 얼굴로 조용히 물러갔다.

이렇게 해서 클린턴과 힐러리의 새 시대의 막이 요란하게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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