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 정권의 수장인 우고 차베스(55)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장기집권 시대를 열었다.
AP통신, AFP통신 등 외신은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개헌안이 15일 54.4%의 찬성으로 통과됐다고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따라 1998년 12월 집권해 세 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는 차베스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에 다시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앞서 2007년 12월에도 연임 제한 철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2%포인트 차이로 부결됐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날 밤 투표 결과 발표 직후 대통령궁에서 나와 지지자들에게 "개헌안 통과는 국민 전체와 사회주의 혁명 완수를 위한 위대한 승리"라며 "신과 국민이 반대하지 않는 한 나는 이미 2012년 대선 후보자"라고 밝혔다. 수도 카라카스에 모인 지지자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경적을 울리며 개헌안 통과에 환호했다.
차베스 반대자들은 차베스가 독재자가 돼가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이번 개헌안 통과로 차베스는 국내적으로 독주 태세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3권을 장악하고 있는 차베스가 국민투표에서 승리함으로써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정치적 힘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야권은 "개헌안 통과로 차베스가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을 갖게 됐다" "그의 정책을 누구도 제어할 수 없게 됐다"고 우려하면서도 그의 정책에 제동을 걸 현실적 정치력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개헌안이 통과된 것은 차베스 대통령이 고유가에 따른 국가 재정 증가를 바탕으로 기간산업 국유화와 반미외교 정책을 전개하면서 '서민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차베스 집권 10년 동안 빈곤층이 절반으로 줄고 의무교육이 보편화했으며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이 진정됐다는 게 베네수엘라 안팎의 평가다.
개헌안이 통과됨에 따라 국가자산 매각금지, 기업 국유화 등으로 요약되는 차베스의 사회주의적 통제 조치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최대 지지 그룹인 빈민을 위한 복지재원이, 국제유가 급락으로 줄어들고 있는데다 식료품 가격이 50%나 올라 임기 연장을 장담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그가 정치적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황에서도 국민투표라는 합법적 방법으로 이긴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당장 차베스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이 업그레이드될 것이 확실하다. 10년 동안 반미와 좌파 기치를 내걸고 중남미 지역 맹주를 자처해온 그의 행보가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중남미 좌파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가장 먼저 차베스 대통령에게 축하 연락을 했다고 강조했다. 임기 연장을 추진 중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비롯해 파라과이,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 중남미 좌파정권도 차베스의 '성공'에 자극받아 연쇄적으로 개헌을 밀어붙일 태세다.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의 관계 개선도 주목된다. 차베스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악마'에 비유하고 미국 앞마당인 카리브해에서 러시아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차베스는 그러나 오바마 정부 출범 후 "빌 클린턴 대통령 정부와도 관계는 좋지 않았지만 참고 견딜 만했다"며 관계 개선 의향을 내비쳤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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